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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유람 feat. 코알라와 유칼립투스

코알라, 너를 안고 달릴게

by 여행하는 과학쌤
코알라, 너를 안고 달릴게

충동적인 성격 탓에 휴가를 코앞에 두고서야 갑작스럽게 비행기표를 끊어왔다. 예외적으로 호주 여행은 일찍부터 준비하게 되었는데, 마일리지를 이용해 브리즈번행 항공권을 구입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면 무언가 위험하다고 했던가. 여행을 앞두고 호주의 기록적인 산불을 다룬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


화상 입은 손에 장갑을 낀 코알라, 불길로부터 도망치는 캥거루, 화염 앞의 소방관... 수많은 사진들이 떠돌아다녔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나와는 먼 일처럼 느껴졌다. 불길과 연기로 덮여 외계 행성처럼 보이는 배경 때문이었을까. 여행지를 바꿀까 말까 사소한 고민을 하던 내 시선을 끈 것은 한 사진이었다. 소방복을 입은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코알라 사진. 엄마에게 안긴 아기 같은 자세와는 대조적으로 한 많던 오랜 삶을 돌아보는 듯한 코알라의 눈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에 이끌려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몇 달 만에 비가 내리면서 산불이 잡히기 시작하던 때였다.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가 이른 아침 브리즈번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고 론파인 코알라 생츄어리로 향했다. 사진으로도 생소한 오리너구리를 난생 처음 보았고, 호주의 특산종인 에뮤새의 뜀박질을 보았으며, 쉬고 있는 캥거루를 자연스레 만져보았다. 가장 만나고 싶었던 코알라는 사육사의 도움을 받아 품에 안았다. 앞발의 발톱들이 살갗을 할퀴는 낯선 감촉에 놀랍게도 본능적인 모성애가 피어났다. 사진 속에서 삶의 자락을 붙들고 있던 코알라처럼 내 옷자락을 꼭 붙잡고 있는 작은 생명체에게 알 수 없는 애정이 샘솟았다.


짧은 만남으로는 넘치는 애정을 다 주지 못했기에 유칼립투스 숲에도 들렀다. 야생의 코알라를 꼭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숲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걸어가면서 유칼립투스 나무에 익숙해질 무렵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시선 끝에 느리게 움직이는 코알라가 보였다. 유칼립투스 잎을 먹고 있는 야생의 코알라라니! 타박타박 나무를 타다가 멈춰선 뒤 천천히 앞발을 뻗어 잎을 움켜쥐고 한 동안 그 자리에서 배를 채우는 과정. 단조롭지만 꼭 필요한 일련의 과정을 사는 동안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그리고 이 숲에서 앞으로 몇 번을 더 반복할 수 있을까. 특별할 것 없는 그 움직임에 빠져들어 숲에서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네 번째 과학 유람, 코알라와 유칼립투스


코알라는 코알라과의 유일한 종이다. 사람과에 오랑우탄, 침팬지 등이 속해있고, 개과에 개, 늑대, 여우 등 여러 종이 속해있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코알라는 평범한 동물은 아니다. 코알라과의 다른 종들은 과거에 멸종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코알라 역시 개체수가 꾸준히 감소하여 멸종 위기 취약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코알라는 유칼립투스 잎만을 먹이로 섭취하기 때문에 사는 곳이 제한되어 있다. 유칼립투스 숲이 파괴되면서 서식지와 먹이가 줄어들고, 좁은 숲에서 근친 교배를 할 확률이 늘어나기 때문에 코알라 종이 번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호주의 산불 역시 코알라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특히 유칼립투스 잎에는 가연성 오일이 들어있기 때문에 더운 여름이면 유칼립투스 숲에서 빈번하게 화재가 발생한다. 게다가 유칼립투스 잎에는 독성을 띄는 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인 숲에서는 곰팡이나 세균과 같은 분해자가 낙엽을 썩게 만들지만, 독성 화합물이 포함된 유칼립투스 낙엽에서는 분해자가 잘 자라지 못한다. 미처 썩지 못한 유칼립투스 낙엽들이 화재를 가속화시키는 땔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곰팡이도 분해하기 꺼리는 잎이지만 코알라는 유칼립투스 잎만을 선택적으로 섭취한다. 화합물의 분해에 관여하는 효소 유전자를 여러 종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유칼립투스 잎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많지 않은 데다가 그나마 얻은 에너지 중 일부는 독성 화합물을 분해하는 과정에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코알라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먹이라 경쟁 상대가 없다고 생각해본다면, 코알라의 편식과 느린 움직임은 꽤 똑똑한 전략이다.


그 느긋한 움직임 때문에 산불이 났을 때 코알라는 캥거루처럼 스스로 뛰쳐나오지 못하고, 그를 안고 대신 달려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소방관에게 안겨 있던 사진 속 코알라는 새로운 숲을 찾았을까. 이제는 어떤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동그마니 몸을 말고 멈춰있던 코알라는 긴 시간 어떤 꿈들을 꾸었을까.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와일드라이프 빅토리아 사이트에 들어가 야생동물의 보호와 터전 복구를 위한 기부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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