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로코 유람 feat. 생명의 특성

사하라 사막에서 여우 만나기

by 여행하는 과학쌤
사하라 사막에서 여우 만나기


모로코에 간 것은 순전히 사하라 사막에서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린 왕자가 떠나 온 소행성 B612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어린 왕자의 여행은 매혹적이지만 사하라 사막까지 가는 길은 마냥 아름답지 않았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기 위해 스페인 남쪽의 작은 마을 타리파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그럴듯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1시간 가량 페리를 타고 모로코 탕헤르에 도착한 순간, 평화는 깨어졌다. 혼자 다니는 동양인 여자에게 남녀노소 모두 반갑지 않은 관심을 보였다. 불편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뚜벅이 여행자가 사하라 사막까지 가려면 며칠 동안 여러 도시를 거쳐야 했다.


탕헤르, 셰프샤우엔, 페즈를 거쳐서 메르주가에 가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건만 탕헤르 버스 터미널에서부터 말도 안되는 금액을 부르는 택시 호객꾼 때문에 지치기 시작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버스를 기다렸지만 갑자기 버스표가 취소되었고, 다시 호객꾼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중간쯤에 위치한 다른 도시 테투안으로 가는 버스, 그리고 현지인 여럿과 동승하는 그랑 택시를 이용해 어렵사리 이동하는 동안 진이 다 빠졌는데, 셰프샤우엔에 도착하자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골목길에서 마약을 권하는 이들과 마주쳤다. 모로코에서 가장 복잡한 메디나가 있는 페즈에서는 길을 알려줄 테니 가이드비를 달라는 호객꾼들과 민트 티를 마시며 하룻밤을 보내자는 난봉꾼들이 한걸음 뗄 때마다 앞을 막아섰다.


밤 버스를 타고 마침내 사막 가장자리 마을 메르주가에 도착한 아침, 추위에 떨면서도 안도감이 뜨겁게 차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메르주가에 사는 베르베르족은 여행객을 데리고 길도 없는 모래 위를 터벅터벅 잘도 걸어갔다. 베르베르족이 이끄는 낙타를 타고 사막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뜻하지 않게 여우를 만났다. 어린 왕자와 서로를 길들였던 여우와 달리, 이 작은 털 뭉치는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땅굴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귀가 삐죽한 사막여우와 여행객들의 화장실로 쓰이던 낮은 관목을 제외하고는 생명체를 볼 수 없었던 모래 언덕 사이에서 우리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사막의 밤을 기다렸다. 베르베르족이 들려주는 악기 소리, 그리고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찾아온 사막의 밤하늘은 그 앞에서 도저히 잠들 수 없는 광활한 우주였다.



여섯 번째 과학 유람, 생명의 특성


우리는 우주의 수많은 점들 속에서 우리와 비슷한 특성을 가지는 존재를 찾고자 노력해왔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화성에 착륙한 탐사선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생명체는 물질을 분해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거나 에너지를 들여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면서 물질대사를 한다. 과학자들이 화성의 토양 샘플에 추적 가능한 영양 물질과 기체를 넣고 실험한 결과, 물질들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으므로 물질대사를 하는 생명체가 없다고 판단했다. 현재의 탐사선은 화성에 현재 살아가는 생명체를 찾는 대신, 과거에 생명체가 존재했을지에 대한 정보를 쫓고 있다.


생명체가 가지는 또 다른 특성은 환경에 따라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막여우의 몸은 기온이 높은 환경에 알맞은 형태다. 털뭉치처럼 작은 몸집에 커다랗게 솟은 귀를 가지고 있어서 체표면적이 넓기 때문에 열에너지가 몸 밖으로 원활하게 빠져나간다. 사막에 떨어진 어린 왕자를 만난 여우의 귀가 커다랗게 그려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같은 여우 속이지만 북극여우는 몸집이 크고 귀가 작은 형태로, 사막여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덩치에 비해 체표면적이 작기 때문에 외부로 빠져나가는 열에너지를 최소화하여 추운 환경에서 유리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서식하는 환경에서 유리하게 살아남도록 생명체의 구조나 생활 습성이 변화하는 과정을 적응이라 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변화가 계속되면 집단 전체에서 유전자의 비율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진화다. 현재 사막에 살고 있는 여우 집단에 큰 귀와 관련된 유전자 비율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다만 적응과 진화가 늘 함께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집단 내에서 유전자의 비율이 달라졌으나,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는 것과는 관계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사막여우의 몸은 적응과 진화가 함께 일어난 경우다. 수많은 별들 중 하나에서 웃고 있을 어린 왕자를 사랑한 여우에게 사막의 모든 별들이 감미로워졌다고 .한다. 사막여우는 어린 왕자를 그리며 사하라 사막의 밤하늘을 마음껏 바라보고자 사막의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해 왔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keyword
이전 05화스위스 유람 feat. 산소 분압과 호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