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겨울 하루는 우리가 알던 24시간이 아닌 것처럼 흘러간다. 오전 9시에도 여전히 밖은 어둡고, 오후 4시도 안 된 시각에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두워지면 상점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기나긴 밤 동안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북극에 가까워질수록 밤은 더 길어진다.
북위 68도에 위치한 마을 사리셀카에서는 영하 20도 이하의 날씨가 일상적이다. 바람이 매서울 때는 눈물이 얼어붙는다. 눈동자에 닿는 모든 곳이 하얀 그곳에서, 낮에는 썰매를 타거나 스노우슈를 신고 산을 걸었고 밤에는 오로라를 기다렸다. 오로라와 함께 다섯 번의 밤을 보낼 숙소로 사리셀카에서 조금 떨어진 카리파를 선택했다. 국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카리파 주변에는 대자연뿐이다. 생필품을 사려면 버스를 타고 사리셀카까지 다녀와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인위적인 불빛이 없는 온연한 하늘을 감상할 수 있었다.
처음 두 밤 동안은 오로라 지수가 높았지만 구름에 가려 별들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하늘이었다. 세 번째 밤에 드디어 하늘이 반짝거렸다. 어느 여행지에서도 이렇게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별을 본 적이 없었다. 밤하늘이라기보다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고화질 스크린이 더 어울렸다. 현실 같지 않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을 때 저 멀리 초록색 가로 줄이 어른거렸다. 숙소를 나설 때부터 허옇게 보이던 것이라 구름 조각인 줄만 알았는데 오로라 지수가 강해지면서 빛깔이 달라졌다. 단조롭던 녹색 줄은 넓은 무늬가 되어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었다. 얼굴이 얼어붙는 것도 잊은 채 얼마나 바깥에 있었는지도 모를 어느 순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커다랗고 현란한 빛이 머리 바로 위로 커튼처럼 일렁이며 나를 감쌌다.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던 그 찰나의 순간, 지구에 발을 붙이고 있으면서도 우주를 날았다.
일곱 번째 과학 유람, 오로라와 지구 자기장
우리가 밟고 서 있는 땅과 우주 사이에는 지구를 둘러싼 대기층이 있다. 그리고 대기층보다 더 먼 곳으로 지구 자기장이 뻗어져 있다. 지구 내부의 외핵을 구성하는 액체 금속이 회전하면서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자석처럼 행동하는데, 지구의 자기력이 미치는 공간을 지구 자기장이라 한다. 대기층과 지구 자기장은 우주에서 오는 많은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태양의 표면 활동에 따라 방출되는 태양풍도 지구에게는 위험한 손님이다. 태양과 같이 매우 뜨거운 온도에서 물질들은 전하를 가진 플라스마라는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 입자들이 지구에 도착하면 대기층의 기체 분자들과 충돌하여 빛을 낸다. 기체의 종류와 밀도, 충돌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보이는 몽환적인 빛의 왈츠를 오로라라고 부른다.
대기층은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오로라를 만나기 위해서는 혹한의 극지방을 찾아가야만 한다. 막대자석 주위에 뿌린 철가루가 N극과 S극을 축으로 하여 둥글게 배열하듯이 지구 주변에도 자기장이 둥글게 형성되어 있다. 실제 지구 자기장은 막대자석 주변 철가루의 배열과는 조금 다르게 멀리 뻗어나가는 형태인데, 태양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풍의 전하를 띤 입자들 중 대부분은 지구 자기장의 면을 따라 이동해 지구를 벗어나지만, 일부는 지구 자기장의 축 근처로 끌려들어와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을 낸다. 태양풍의 입자가 끌려들어 오는 극지방에서 오로라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지구 자기장의 축은 지구의 자전축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나침판의 N극이 가리키는 곳이 지구 자기장의 북극인데, 지구의 자전축을 기준으로 한 지리상의 북위 90도와는 살짝 거리가 있다. 지도상의 북극 위에 정확히 서 있더라도 정작 나침판의 바늘은 다른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나침판이 가리키는 곳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는데, 지구 자기장을 만드는 원천인 지구 내부의 외핵이 지금도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자기장의 축도 조금씩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자기장의 축이 달라지더라도 지구의 자전축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기에 오로라를 만나기 위한 극지방 여행은 여전히 유효하다.
태양의 활동이 활발한 기간에 극지방에 머문 덕분에 구름이 깔려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오로라를 만날 수 있었다. 식상해질 법도 했지만 내가 있는 곳을 잊게 만드는 꿈결 같은 매력에 볼 때마다 가슴이 부풀었다. 지구 자기장의 위치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면 어떤 알 수 없는 미래의 나는 우리나라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오로라가 열어준 우주를 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