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낙타의 속눈썹에 얹어진 별
두바이 낙타의 속눈썹에 얹어진 별
메르스 파동이 사그라든 후였는데도 유럽행 비행기 중에는 중동을 경유하는 항공편이 가장 저렴했다. 두바이가 아랍에미리트의 도시 중 하나라는 것,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의 수도는 아부다비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에 기왕 발을 들였으니, 수도도 아니면서 으리으리하기로 유명한 두바이에 며칠 머물러보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부르즈할리파, 아쿠아리움, 그리고 사막. 두바이에서 할 만한 일들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으로 사막투어를 신청했다. 투어 회사에서는 건강한 낙타를 데리고 있다고 광고하면서도, 낙타 대신 차를 타고 사막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메르스 때문에 한동안 낙타를 찾는 손님이 없었으리라. 차를 타고는 사막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얕은 사막이라도 가봐야지 어쩌겠는가.
늦은 오후에 사람들을 태운 투어 차량은 해질 무렵 사막에 도착했고, 모래를 배경으로 노을 사진을 찍으면서 투어가 시작되었다. 사막의 한가운데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관광객을 대상으로 마련된 공간이어서 그런건지, 풍경은 기대와 조금 달랐다. 철조망이나 전신주, 건물과 함께 투어 차량이 간간이 보여서, 사막이라기보다는 모래로 뒤덮인 공사장이 떠올랐다. 어쩐지 사막보다 축제 준비에 마음이 끌렸다.
숯불에 구워지는 양꼬치 냄새를 맡으며 기웃거리다가 헤나를 그려주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여인은 팁을 많이 건네는 사람에게 더 복잡한 문양을 그려주며 깊은 축복을 빌어주고 있었다. 나는 적당한 깊이의 축복과 함께 간단한 무늬를 새겼다. 이 정도의 가벼운 축복이면 축제장 구석에 있는 낙타 곁에 머무는 정도로 행운을 사용하고 싶었다. 낙타는 오랫동안 사람 따위는 만나본 적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바닥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 때때로 푸르르 콧방귀 소리와 함께 몸이 들썩거렸다. 저 들숨과 날숨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바람이 불자 넓게 펼쳐진 흑색의 기다란 속눈썹을 배경으로 모래가 몇 알 얹어져 별처럼 반짝거렸다. 낙타의 속눈썹 위로 사막의 밤하늘이 내려앉았다.
두 번째 과학 유람, 바이러스
메르스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은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단백질 껍질이 유전 물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단순한 구조인데 너무 단순한 나머지 혼자서는 아무런 생명 활동을 하지 못한다. 에너지를 얻기 위한 효소나 유전 물질을 복제하는 효소조차 없기 때문에, 생명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는 다른 생명체에 기생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의도치 않게 시스템을 제공해주는 세포를 숙주 세포라고 한다.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가 가지고 있는 물질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유전체를 복제해 자손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는 유전체의 종류에 따라서 크게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로 나뉘는데 메르스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RNA다. 왕관과 같이 삐죽삐죽 돌출된 모양의 단백질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RNA 바이러스를 총칭하여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하는데, 메르스 바이러스, 사스 바이러스, COVID-19 바이러스 등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속한다. 삐죽하게 돌출되어 있는 돌기 단백질은 숙주 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하여 숙주 세포 안으로 잠입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숙주 세포 안으로 들어온 코로나 바이러스의 RNA는 숙주 세포의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신의 유전 정보를 번역한 단백질을 만든다. 이 단백질들은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복제하거나, 단백질 껍질을 합성하기 위한 하위 물질들을 만들어낸다. 복제된 유전체와 새로 합성된 단백질 껍질이 조립되어 숙주 세포 밖으로 배출되면,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러 떠나는 자손 바이러스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바이러스가 여럿 만들어지더라도 살아 있는 세포 밖에서는 여전히 활동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증식한 바이러스가 다른 생명체 안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생명체들 사이의 불필요한 접촉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생명체는 사람만이 아니다. 동물, 식물, 세균까지 스스로 생명 활동을 할 수 있는 모든 세포는 바이러스의 숙주 세포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특정한 숙주 종을 감염시킨다.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는 단백질 껍질의 구조에 따라 결합할 수 있는 수용체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변이가 생기면 다른 종의 숙주도 감염시킬 수 있게 된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낙타로, 낙타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며 숙주 종을 확장한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구석에 엎드려 느리게 숨 쉬고 있던 두바이의 낙타는 사막의 문제아로 낙인찍힌 것이 억울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낙타 역시 다른 동물 종에 의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피해자일 뿐이고, 그러한 동물들의 영역에 허락 없이 침투한 것은 사람인데 말이다.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밤하늘의 별빛이 다시 한번 낙타의 속눈썹을 쓸었다. 사막의 밤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