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필사모임 <재밌어서 씁니다>가 내게 남긴 것들
<재밌어서 씁니다> 8월 필사 모임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온라인상에서 통성명만 한 사람들인데 곧 이별하게 된다니 아쉽다. 인연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달래본다.
<일기와 읽기> 연재 글을 다시 읽다가 느낀 건데 나는 ‘마음’이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썼다. 작년 일기장 어딘가에 다음번에 또 책을 낸다면 ‘마음이 하는 일’에 관해 써보고 싶다고 적었었는데. 기록은 막연한 계획을 실행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다짐이나 결심을 적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작은 일부터 사부작사부작 하게 된다.
아무튼 필사모임을 하면서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사람들의 기록 자체보다 기록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회식 후 만취 상태로 적은 L님의 삐뚤빼뚤한 글자가 인상 깊어 캡쳐해 사진첩에 저장해 두었다. 그는 <우아한 가난의 시대>라는 책 속의 문장을 필사했다.
“내가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자꾸만 잊게 되는 것은 가난이다. (중략)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되는 자의 방종한 생활이었다. 방종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는 것도 안다”
“나는 이 행운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낭비의 시간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게 해주었다”
사람들이 필사한 문장은 작가의 말이지만, 독자에게 전달되어 그의 생각과 공명하는 순간 독자의 말이 되는 것 같다. 작가는 보통의 사람들이 하고 싶었던 말, 그러나 좀처럼 머릿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아 복잡하게 얽혀 있던 말을 문장이라는 체계적인 형태로 정돈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때로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 같은 문장을 만난다. 그런 문장들이 독서노트에 새겨질 때 그것은 단순히 글자가 아니라 영혼의 소통이 된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쓴 작가와 책 속 문장을 필사한 독자는 ‘가난’과 ‘행운’이 담긴 문장으로 잠깐 만났다 헤어졌다.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인연이었다. 필사 인증을 한 뒤 그는 이런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오늘 너무너무 힘들고 중요한 행사가 있었는데요 회식 때문에 술 잔뜩 마시고 와서 그래두 필사했제요 오늘도 고생많으셨어요 다들 푹 주무세욪’
너무너무 힘들고 중요한 행사란 무엇이었을까. 술을 잔뜩 마셔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만취 상태에서 한 글자라도 써 보려는 마음은 또 뭐였을까. 묻지 않았지만 ‘필사했제요’ ‘주무세욪’ 같은 오타를 바라보고 있으니 알 것도 같았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문장은 K님의 ‘하루 3줄 초등글쓰기의 기적’의 한 구절이었다.
“아이가 한글을 더듬더듬 읽기 시작하면 아이에게 짧은 편지를 보내주세요. 처음에는 글씨를 크고 바르게 써서 보내주면 좋습니다. 가방이나 아이가 잘 가지고 노는 장난감 또는 필통에 ‘우리 아들 사랑해. oo가 정도의 짧은 메모를 써주면 아이가 정말로 행복해합니다’
<하루 3줄 초등글쓰기의 기적_윤희솔 59p>
필사 모임의 좋은 점은 평소에 내가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거였는데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둔 K님의 글들이 그랬다. 오늘 그는 필사한 문장과 함께 실제로 아이에게 쓴 편지를 공유했다.
“이든아. 아빠야. 이든이는 종종 아빠에게 편지를 써주는데 아빠는 그만큼 답장을 많이 못하는 것 같아서 편지를 써. 오늘 엄마랑 집에서 재밌는 시간 보내고 있지? 오늘 저녁은 이든이가 요리하는 날이니까 기대할게. 이따가 만나. 사랑해.”
‘사랑해’ 옆에는 빨간색 반짝이 하트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스티커를 떼어서 붙이는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또 생각에 잠겼다. 이든이를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을 떠올리니 가슴이 찡 했다. 좋은 글이란 진심이 담긴 글이었다. ‘이따가 만나. 사랑해.’ 라는 문장은 내가 8월에 읽은 문장 중에 가장 귀하고 아름다웠다. K님이 인증샷을 업로드 한 뒤 곧바로 S님의 인증샷이 업로드 되었다. 그러면서 S님은 K님에게 ‘이든’이라는 이름이 예쁘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S 님이 필사한 문장은 이랬다.
“사랑의 기쁨은 그 사람의 발견만이 아니다. 그건 내 안에 들어있던 나도 몰랐던 나들의 발견이다. 세상에 이런 내 안에 이런 비밀스러운 부드러움이 있었다니, 이런 다정함, 이런 친절함, 이런 예민함, 이런 애착과 기쁨이 있었다니.”
<마르셀 프루스트_기쁨의 나날들>
마르셀 프루스트의 <기쁨의 나날들>의 문장을 읽고 난 K님은 놀라며 ‘이든’은 히브리어로 ‘기쁨’을 뜻한다고 했다. 사소한 우연에 모두가 즐거웠던 순간. ‘태풍 조심하세요’ ‘코로나19로 심란하지만 버텨봐요’ ‘오늘도 수고 하셨어요’ ‘오늘 하루도 파이팅이에요’ 같은 따듯한 말들.
<재밌어서 씁니다>가 내게 선물해 준 기쁨을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