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것이 하루 끝의 선물처럼 여겨졌다

by 미료





2020년 8월 첫째 주의 어느 날, 정민 교수가 쓴 <한시 미학 산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썼다. 필사를 하던 중 조선시대 문인들이 즐겨마시던 술맛을 궁금해하며 입맛을 다시다 결국 레드 와인 한 병을 땄다. 호로록 한 모금 마시고 한 문장 쓰고, 또 호로록 마시고 다음 한 문장을 썼다.


새빨간 와인을 노트에 한 방울 흘리기라도 할까 봐 조심하는 한편 그것마저도 나 홀로 즐긴 풍류의 흔적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내친김에 유튜브에 접속해 부엉이 우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곁들여진 '아련한 동양풍 음악 수면 음악'을 재생했다. 흘끗 댓글창을 보니 사람들이 쓴 시로 가득했는데 다들 필력이 대단했다. 유튜브 문인들의 시를 읽느라 정작 책은 몇 페이지 읽지 못했다.


수세기 후 가히 코로나 시대의 예술로 기록될만했다.












코로나는 Bar에서나 파는 비싼 수입 맥주인 줄로만 알았던 2005년 봄.


스무 살 성인이 되어 자유롭게 술집을 드나들 수 있게 된 나는 사나흘에 한번 꼴로 술을 마시러 다녔다. 말술을 마시는 부모님의 알코올 흡수 DNA는 10대 후반 무렵 조용히 포복해 있다가 주민등록증이 나온 이후 '앞으로 돌격!' 하기 시작했다.


내 주종목은 단연 소주였는데 아무리 마셔도 배가 부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생수와 안주를 든든히 챙겨 먹지 않아도 숙취를 거뜬히 이겨내던 시절, 때로 비틀거렸지만 흔들리는 걸음조차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젊음이 영원할 거란 착각 속에서 술처럼 달고 쓴 청춘이 지나가고 있었다.


흔히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술만큼이나 술자리 분위기를 좋아했다. 적당히 술에 취해 눈에 힘이 살짝 풀린 인간들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는 없었다. 지금이야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선입견을 콩팥처럼 달고 살지만 당시에는 그저 사람 만나는 게 즐겁기만 한 해맑은 때여서 처음 본 사람들과도 술 한 잔 기울이며 금방 친해졌다.


술에 취해 좋아하는 사람들과 문학과 음악과 사랑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인생의 맛이고 멋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사치스럽거나 번거롭다고 느껴지는 날이 많아졌다. 생계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예술을 무용하게 여겼고, 고작 몇 마디 말 섞어서 얻은 사소한 단서들로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을 분별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허물없이 먼저 다가가는 점이 나의 장점이었는데, 어느덧 상대의 허물만 발견하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처음 만나는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며 궁금한 것이 있어도 깊이 질문하지 않았고 상대방도 그래 주길 바랬다.


익숙함에 젖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예전만큼 쉽지 않아진 상황에서 온라인 필사 모임을 진행하는 일은 내게 다소 두려운 도전이었다. 그러는 한편, 세상과 타인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내게 상대방에 거리 두는 일과 등 돌리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고, 배척을 배려로 고집을 소신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 날, 필사 모임을 시작한다는 포스팅을 블로그에 올리고 채팅방을 열었다.






관성을 이겨내고 새로운 모험에 뛰어든 자에게는 늘 보상이 주어진다.


처음 만난 타인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여행지와 같았다. 얼굴 모르는 사람들과 필사 모임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전에 해본 적 없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방이 읽는 책과 베껴 쓴 문장을 보면 요즘 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어떤 점을 고민하고 성찰하며 사는지 자연스레 알게 됐고 타인의 노트를 탐험하며 나의 세계관은 조금씩 확장되어 갔다.




유난히 피곤했던 어느 날, 잠들기 전 누워 채팅방의 대화와 필사한 책의 문장을 읽고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하루 끝의 선물처럼 여겨졌다.


단순히 책의 내용만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이 내 삶의 영역으로 성큼 걸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어떤 이는 회사에서 업무 시간을 쪼개서 잠깐 필사의 즐거움을 누렸고 어떤 이는 아이를 겨우 재우고 식탁에서 한숨 돌리며 필사의 고요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회식 후 집에 돌아와 음주 필사를 하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3박 4일의 긴 여행 중에 짬을 내어 성실함과 꾸준함을 단련했다. 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내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독서노트를 쓸 때 사용하는 필기구나 각자의 필체를 구경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책 한 권을 완독 했다고, 노트 한 권을 끝까지 다 썼다고 뜨거운 격려와 축하를 받는 공간은 세상에 이곳 하나뿐일 것 같았다.


나는 우리가 공유하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졌고 '오픈 유어 노트(@open_yournote)라는 이름의 아카이브용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기록을 기록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계정이 내가 하는 모든 활동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오늘도 필사 모임 채팅방의 스크롤을 내리며, 나는 이것이야말로 코로나 시대의 풍류라는 생각을 한다. 조용한 곳에 은거하며 먹을 갈고 호필을 들던 옛 선비들처럼, 각자의 공간에서 고요히 쓴 명문을 온라인 상에서 공유하는 일이 ‘문방사우’의 현대 버전처럼 여겨진다.


비록 문장과 술잔을 나눌 사람이 채팅방 너머에 있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양한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도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처럼 여겨진다.


물론, 직접 만나 한 공간에서 함께 필사도 하고 좋아하는 책과 문구류에 대한 수다를 나눠볼 날도 기다린다. 그날의 BGM은 '아련한 동양풍의 음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날까지 벼루에 먹을 가는 마음으로, 내 마음 밭을 갈아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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