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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료 Oct 11. 2021

여자는 결혼해서 애 낳으면 끝이야



*


<박완서의 말과 낭독>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다. 박완서 소설가의 생애를 요약한 영상을 보다가 한 문구 앞에서 잠시 숨을 멈췄다.  


'결혼을 하고 다섯 아이를 낳았다'  


이 평범하디 평범한 한 문장이 내게는 많은 이야기를 전했다. 다섯 아이라니. 나는 지금 한 사람을 만드는 것도 버거운데. 



*



외할머니는 자식을 일곱을 낳았다. 

아들을 낳기 위해서였다. 



 임신 하기 전까진 '옛날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았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게 얼마나 초인적인 일인지 실감한다. 자식이 일곱이라면, 거의 7여년을 배가 불러 있었다는 얘기다. 낳아 기른 세월까지 헤아려 보면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어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 임신을 경험하고 나니, 요즘 같은 세상에서 아이를 셋, 넷 이상 낳는 여성에게는 훈장을 줘야 할 것 같다. 임신과 출산이 자신의 생명까지도 거는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물론 애국심이 넘쳐서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임신을 누구보다 바라는 주체는 국가다. 국가가 진심으로 출산을 장려한다면, 아이를 낳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야 응당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임신을 하고도 남편의 밥상을 차리고, 소쿠리를 들고 시장에 나가 나물을 팔았던 우리 할머니들을 위해서 국가는 무엇을 해주었나. 임산부와 다둥이 세대를 위한 혜택이 싱글들에게는 불평등한 혜택으로 비춰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1인 가구의 복지는 별도로 다뤄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네쌍둥이 엄마, 일곱 명의 자녀를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인간극장이 자꾸 뜬다. 내게는 어떤 유리 천장을 뚫고 성공한 여성들보다도, 그들이 영웅처럼 느껴진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나 업적보다 '결혼을 하고 다섯 아이를 낳았다'는 문장이 더 와 닿는 건, 여성의 가사/육아 노동이 사회 진출에 비해 평가절하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두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들 모두가 위대하다. 


'여자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결혼해서 애 낳으면 끝이야' 

그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듣고 자란 나는 요즘 '끝' 이라는 자리에 '시작'이라는 단어를 대신 넣어본다. 

어쩐지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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