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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료 Oct 22. 2021

'못하겠다' 할 시간에 그냥 할 것

1


삼천 배를 한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네 번쯤. 

보통 절에서 하는 기도는 수행자의 레벨(-불교에서는 '근기'라고 부르는)에 따라 3일, 7일, 21일, 100일, 300일, 3년으로 나뉜다. 

내 최고 기록은 7일이었다. 삼천 배 챌린지 (라고 부르기에 뭐하지만) 3일째 되던 새벽, 내 온 몸의 관절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과장이 아니라, 몸이 그렇게 소리지르는 것 같았다. 

와, 이걸 내가 일주일이나 할 수 있을까, 1년 3년이나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독한 사람들인 거야 (상종하지 말아야지) 싶은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몸을 질질 이끌고 법당에 올라가서 절을 하면 신기하게 몸이 움직여졌고,  그날치 삼천 배도 그럭저럭 마무리가 됐다. 

몸이 '이제 더는 할 수 없어' 신호를 보내는 상황에서 그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프다, 힘들다, 하기 싫다는 생각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절을 할 것. 


어쨌든 시간은 가니까. 


죽을 거처럼 힘들지만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게 죽지 않으니까. 


2

신생아 육아에도 비슷한 고비가 찾아온다. 

3일차, 7일차, 21일차.............

그러고 보면 불교 수행에서의 3,7,21,100일...기도는 어느 정도 과학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건지도 모른다. 인간이 몸을 이용해 처음 어떤 일에 도전할 때 한계를 느끼는 적정 타이밍 같은 것?




3




분만 당일부터 22일차인 오늘까지 직수를 했다. 

직수가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굳이 설명하자면

모유를 유축해서 젖병으로 먹이는 걸 유축 수유

분유는 설명할 것도 없이 분유 수유, 

젖병 없이 바로 젖을 물리는 걸 직수라고 부른다. 

임신 중에 나는 직수가 제일 쉬울 거라고 믿었다. 

하루에 10회 이상 젖을 물려야 한다는 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으니까. 

젖만 물리는 게 아니라, 중간에 트름도 시키고 기저귀도 갈고 먹다가 자는 애도 깨우는 노동까지 들어간다는 건 미처 몰랐으니까. 

아무튼, 직수는 힘들었다. 

그러나

삼천 배보다는 쉬웠다. 



4


젖양이 모자라면 언제든 분유를 먹일 생각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 

분만 5일쯤 되자 메마른 사막 땅에 수맥이 터지듯 

모유가 콸콸콸 샘솟기 시작했다. 

해오는 빠는 힘이 좋았다. 

잘 열리지 않는 콜라 뚜껑을 입으로 따는 

남편의 턱 관절을 닮았는지

젖을 빨 때마다 관자놀이가 들썩들썩 했다. 

하루 종일 물 한모금 못 먹은 사람처럼 허우적 대며 먹다가, 배가 부르면 자기가 알아서 내 가슴을 밀어내거나 입을 꾹 다물었다. 신기했다. 움직임이 없어서 일으켜 세워보면 만취한 사람처럼 입가에 모유를 칠갑을 하고 헤롱댔다. 

직수는 중독과 같았다. 

몸이 힘들어서 한 템포 쉬어가고 싶은데, 

아기가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5



3일째에 고비가 오긴 왔었다.

나는 분명 깊게 앙, 물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젖꼭지는 아팠다.

병원에서는 간호사에게, 

집에 돌아와서는 방문 미드와이프에게 

내 젖꼭지를 스스럼 없이 보여주며 호소했다.

[여기 좀 봐봐. 딱지가 졌어. 

아픈데? 계속 물려도 될까?]

(애를 낳고 나면 아무데서나 가슴을 드러내는데 

부끄럼이 없어진다) 

상태가 안 좋은데. 그냥 분유를 먹이는 게 낫겠어. ... 

라고 답해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간호사들과 미드와이프들은

 모유 수유 강국 호주 정부에서 지령이라도 받은 듯이 

하나같이 똑같이 답한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처음이라 그럴 거야. 

아무래도 예민한 부위니까

계속 물리다 보면 익숙해 질거야^^]

전문가의 말은 맞기는 맞았다. 

아파도 계속 물려라. 

젖양을 늘리는 최고의 유축기는 

메델라도 스펙트라도 아닌, 

아기 himeself. 

3일 간, 내가 하루 아기에게 젖을 물린 횟수는 14회였다. 

2시간도 안 되는 텀으로 수유를 했다. 몸이 축 났다. 

[힘들면 그냥 분유 먹이자]

남편이 말했다.

[그래. 그럼... 얼른 가서 분유 좀.. 사 와...]

내가 답했다.

6





해오는 분유도 잘 먹었다. 

다만 젖병을 물리는 스킬이 없어서, 

먹을 때 입에 공기가 많이 들어갔고 금방 토를 했다. 

어른들 술 먹고 오바이트 한 냄새 같았다. 

그 냄새가 싫어서 다음날 다시 직수를 시작했다. 

하루 그렇게 쉬고 나니 체력이 돌아오기도 했고. 

죽겠다, 싶은데 죽지 않는 것처럼

못하겠다, 싶을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비결은 간단했다. 

'못하겠다' 할 시간에 

그냥 할 것. 

7





간단히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해오가 너무 열심히 먹어서다. 

2-3시간에 한 번씩 

먹고, 소화시키고, 싸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그 어려운 일을 순조롭게 해주고 있는 게 고맙다.

  

내가 힘든 만큼 해오도 힘들고,  

내가 노력하는 만큼 해오도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모유 수유는 수행과 비슷한 데가 많다. 

힘들지만 어느 순간 깊게 몰입하게 되고

다른 일은 다 잊은 채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해오의 따듯하고 부드러운 감촉, 

아기한테서만 나는 냄새, 

쌕쌕, 연약한 숨소리 

어제보다 속눈썹과 머리카락,

손톱은 얼만큼 자랐는지,

어제보다 표정은 얼마나 늘었는지. 

그런 걸 보다보면 잠시 몸 힘든 걸 잊는다. 

어쨌든 시간은 가니까.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렇지만,

해오와 나의 깊은 무의식에

소중하고 애틋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생각하면

다시 힘을 내게 된다. 

임신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육아에 있어서도 여전히 빈틈 많고 부족하지만,

죄책감 같은 거 느끼지 않고

 

그저 '나는 최선을 다했어. 

너도 최선을 다했지. ' 라고 

얘기하는 엄마이자, 동료 인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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