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꽃이 스스로 언제 피어날지 결정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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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은 정말 몸이 무겁다. 등산으로 치면 깔딱고개 올라가는 느낌이랄까. 내려오는 사람들이 '다 왔어. 힘내' 그러면 힘은 나는데, 다 왔다는 게 실감이 안 나고 빨리 정상이 보였으면 하는 마음.
2.
지난 9개월 동안 체력 관리, 식단 관리에 신경 썼다면 남은 한 달은 마인드 컨트롤에 집중했다. 2021년 한 해, 사람 하나를 만든 내 몸을 토닥토닥. 아무 이벤트 없이 무난하게 자라 준 착착이에게도 무한 고맙다. 임신 기간 동안 총 4번 병원에 갔다. 마지막 검진에선 심지어 배 둘레를 재지도 않았다.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배를 보더니 '뷰티풀' 외치며 집에 보냈다. 조산사 불러서 집에서 낳아도 될 거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 호주의 병원 시스템
3.
출산에 대한 공포, 두려움 흘려보내기
(불안과 공포의 트리거가 될만 한 출산 영상이나 블로그 글은 안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4.
38주차부터는 변이 묽어졌다. 단단한 배뭉침이 잦다. 소파에 앉아있으면 한쪽 배가 불뚝 솟아오르기도. 자다가 배가 불편하면 두어 번 더 깨기도 한다. 나는 오른쪽으로 눕는 게 편한데, 한 쪽으로만 누워자니 숨이 답답해서 깨기도 하고, 배고파서 깨기도 한다. 그래도 일어났다가 다시 잘 자는 편이었는데 어제는 혹시 진통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1-2시간 정도 잠을 놓쳤다. 새벽에 놓친 잠은 늦잠으로 보충한다. 임신 기간 내내 수면의 질은 그렇게 좋지 않은 편인데.... 그냥 그런 수면 패턴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5.
37주에 찾아온, 억' 소리 나게 하는 치골통은 사라졌다. 임신 내내 찾아오는 근육통은 살살 걷고, 쉬다보면 금방 없어졌다. 몸무게는 여전히 28주차 때 그대로. 총 4킬로그램이 늘었다. 임당 때문에 밀가루 음식이나 디저트류를 마음껏 못 먹었지만, 덕분에 몸은 가볍고 여전히 붓기 하나 없는 건 좋다. 임당 아니어도 <탄수화물, 당 관리> <매일 20분 운동> 이 두 가지는 정말 임산부에게 추천!
5.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던 날도 있었다. 오후 내내 편두통에 시달렸는데 다행히 다음날 사라졌다. 내 경우는 보통 몸이 긴장할 때 두통이 찾아오는데 그날도 나만의 방법으로 어찌저찌 해결. 다음날 온 몸에 독소가 빠져나간 듯 몸도 기분도 좋아졌던 기억.
6.
40주 0일에 유도 분만 날짜를 잡았다. 임신 당뇨는 일찍 분만을 하기도 하는데, 자연주의 출산을 추구하는 호주에서는 큰 문제만 없으면 제 날짜에 출산하는 쪽을 선호하는 것 같다. 주수 꽉 채우고 나와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39주를 지내왔는데 그까짓 1-2주 더 고생하는 게 대수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봄에 꽃이 스스로 언제 피어날지 결정하는 것처럼, 태아들도 그런 것 같다. 어떤 꽃은 조금 먼저 피어나고, 어떤 꽃은 조금 나중에 피어난다. 서두르지 않고, 게으르지도 않게. 각자의 생애 주기에 맞게 꽃망울을 열어낸다. 모두가 이런 방식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모든 인간은 귀하다는 말을 몸으로 체감한다.
착착이가 그 꽃들처럼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길 기다리는 39주차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