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로즈 <평균의 종말> & 박웅현 <여덟 단어>
표준화, 평준화된 교육 시스템 속에서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개개인이 재단되고
등수나 점수, 학벌 등 결과론적으로 개인 가치가 판단되는 게 우리의 여전한 현실이다.
개개인성이 점차 강조되고는 있지만 깊숙이 박혀 고착화되어 버린 통념과 제도의 틀 밖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다. 돌아보면 나 역시도 매 단계마다 평균에 대비한 내 위치를 확인하고, 평균 이상이 되려고 기를 썼던 것 같다. 사회가 이상적이라고 제시하는 기준이 ‘원형’이라면 ‘네모’에 가까운 내 본질을 숨기고 떼어내고 갈아내서라도 둥글둥글하게 맞춰가려고 애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성과나 속도에 비해 뒤처지는 나 자신을 자책하고, 누군가 제시한 기준에 나를 구겨 넣듯 끼워 맞추는 소모적인 과정들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과연 명확한 기준이 있을까 싶다.
아득바득 올라와보면 그 위에 또 다른 세상이 있고
하나가 충족되고 나면 또 다른 갈증이 생기기도 하며
막상 달려왔는데 나의 기대와 다를 수도 있다.
요즘 뒤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나다움’에 대한 고민을 자꾸 하게 된다.
더불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내 딸은 나의 이런 시행착오를 좀 덜 겪었음 좋겠고,
아이가 지닌 고유의 빛들이 현실에 의해 내리덮이고 묻히지 않았음 한다.
정세랑 소설 <시선으로부터,>에 나왔던 ‘커피머신’에 관한 대화가 떠오른다.
“엄마, 재밌는 이야기 해줄까? 우리 회사에 커피머신이 하나 있어. 휴가 다녀온 사람이 엄청 비싼 코나 원두를 사온 거야. 다들 기대에 차서 그 머신에 내렸는데……”
“어떻디?”
“코스트코 원두랑 똑 같은 맛인 거야.”
“뭐어? 그럴 리가?”
“충격이었지, 그럴 리가 없다, 뭐가 문제인가? 그래서 드립으로 내려봤더니 풍미가 다르고 눈물이 날 것같이 맛았어서, 커피머신이 문제였던 게 밝혀졌어. 애초에 드립으로 내렸어야 했는데 원두 낭비한 거지. 사온 사람 당황하는 얼굴을 엄마가 봤어야 하는데.”
“그렇지만 대단한 기계네.”
“왜?”
“그렇게 다른 원두를 똑 같은 맛으로 내려버린다는 게. 대단한 항상성이잖아?”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p.122
각각의 원두가 지닌 풍미를 ‘대단한 항상성’으로 하향 평준화시키는 커피머신…
고유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저렴한 맛으로 획일화되어버린 커피원두처럼 씁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은 ‘평균주의’의 허상과 맹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나다움’을 고민하던 내게 큰 깨달음을 던져준 책이기도 하다.
‘평균’이라는 개념은 특정 집단의 대표값을 보여주는 유용한 통계수치로 제시되고 있지만
이를 유일한 지표로 맹신한다거나 무분별하게 활용하면 안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특히 개개인과 관련된 결정에서는 더더욱…
저자는 평균적인 사람은 없다고 주장하며, 평균주의를 극복하고 개개인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저자가 제시한 평균주의 극복 방식은 다음 세 가지다.
1. 들쭉날쭉의 원칙
다른 사람들의 재능의 들쭉날쭉성, 즉 우리 아이들, 직원들, 학생들의 들죽날쭉한 측면을 인정할 줄 알게 되면 그들의 미발굴된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런 강점을 제대로 활용하도록 이끌어주는 동시에 약점을 간파해 그 약점을 개선하도록 도와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한편 자기 자신의 들쭉날쭉성을 인식하게 되면 재능에 대한 일차원적 관점에 사로잡혀 자신의 역량을 제약당할 위험이 그만큼 줄어든다.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p.161
2. 맥락의 원칙
맥락의 원칙에 따르면 개개인의 행동은 특정 상황과 따로 떼어내서는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으며 어떤 상황의 영향은 그 상황에 대한 개개인의 체험과 따로 떼어서는 규명될 수 없다. 다시 말해 행동은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독자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표출된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평균적 경향이나 ‘본질적 기질’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맥락에 따른 행동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p. 174
3. 경로의 원칙
인간의 발달은 그 종류를 막론하고 단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라는 것이 없으며 이 사실은 개개인성의 세번째 원칙인 경로의 원칙에서 근본을 이루는 토대다. 경로의 원칙은 다음 2가지 확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첫 번째,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는 그리고 그 어떤 특정 목표를 위한 여정 역시도 똑 같은 결과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이며 그 길은 저마다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 두 번째,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경로는 당신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된다.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p. 209
이 세 가지만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도
획일성에 휩쓸리지 않고 나다움을 끌어내고 인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1) 사람은 누구나 들쭉날쭉 다를 수 밖에 없다, 각자 가진 잠재력이 다르다.
2) 상황이나 특성에 따른 전형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과 상호작용을 통해 행동이 결정된다
3) 단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라는 것은 없으며,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은 경로와 속도는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된다.
박웅현의 <여덟단어>라는 책 ‘자존’편 ‘Be yourself’에 관한 글에 보면
‘대흥사 침계루’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땅끝마을 해남에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절이 하나 있습니다. 대흥사입니다. 그 절의 북원 출입문으로 대웅전 맞은현에 자리한 침계루(枕溪樓)의 기둥들은 기둥뿌리의 지름을 기둥머리의 지름보다 크게 만드는 민흘림 기법을 쓰지 않고 휘면 휜 대로 나뭇가지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각각의 모습을 살려서 지었습니다. 직접 가서 보면 정말 멋집니다. 나무 그대로의 모습으로 1500년의 세월을 지낸 기둥을 보고 있자면 여러 생각이 겹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이 나무 기둥과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깎고 다듬어져 전부 똑 같은 모양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닌, 생긴 모습 그대로 각자의 삶을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박웅현 <여덟 단어>, p. 37
저자의 설명을 읽고 옆 페이지 사진을 한참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들쭉날쭉할지언정 자재 그 자체의 결과 모양들을 살려 이뤄낸 조화로움…
똑같이 재단한 자재로 각 잡아 쌓아올린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좀 덜 매끈할지라도, 좀 더딜지라도 ‘소박한 나다움’을 하나 둘 발견하고 느끼면서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