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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새벽 May 31. 2024

#1-8. 우회적으로 빗댄 어휘


TV 프로그램 <알쓸별잡>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님이 영화 <기생충>에 함축된 상징적 장치들을 설명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상층과 하층에 위치한 인간의 처지를 수직 구조적으로 시각화해서 잘 풀어낸 영화라는 평이었다. 결국 ‘기생충’은 낮은 지대와 지하에 거주하는 하층민 가족의 삶을 숙주에 기생하며 생명을 연장하는 생명체에 빗댄 절묘한 비유어인 셈이다. 


이처럼 비유는 특정 현상이나 대상이 지닌 의미의 속살을 다른 사물로 한겹 덧싸서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수사법의 일종이다.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개념을 한방에 정리해 명료하면서도 시적으로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우회적인 지칭법이지만 표피를 들추면 본질과 속성이 절묘하게 닮아있음을 발견하고 절로 수긍하게 된다.      

 

실제 우리는 언어를 구사할 때 비유의 묘미를 종종 활용한다. 가령 ‘꽃놀이패’라는 바둑용어가 있다. ‘상대편은 패가 나면 큰 타격을 입지만 해당편은 크게 상관이 없어 봄철 꽃놀이하는 기분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는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지만 꼭 바둑 경기가 아니더라도 정치, 경제, 스포츠 등 경쟁 구도 상황에서 ‘꽃놀이패를 손에 쥐고 있다’, ‘꽃놀이패를 들고 있는 형국이다’,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볼 것 없는 꽃놀이패나 마찬가지다’ 등과 같이 비유적으로 사용된다.대결에서 이기든 지든 상대에 비해 크게 손해볼 것 없는 상황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으로 대변해주니 언어의 경제성 측면이나 수사학적 측면에서 괜찮은 선택이다.     




하지만 번역의 관점에서 볼 때 비유어는 문화권마다 적용되는 근원 요소가 다르기 마련이라 처리하기 까다로운 대상이다. 중국어에 ‘网络水军(사이버수군)’이라는 말이 있다. 온라인 상에 댓글을 써서 올리는 행위를 중국에서는 ‘물을 주다’는 의미인 ‘灌水’ 혹은 ‘注水’라고 칭한다. 댓글이 쭉쭉 올라오는 형상이 마치 물을 뿌려주면 화초가 쑥쑥 자라는 모양과 같다고 해서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물을 뿌려대듯 댓글 공세를 퍼붓는 행위자들을 일컬어 ‘水军(수군)’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한국어로 옮긴다고 생각해보자. 중국어에서 비유의 속성으로 사용했던 ‘물(水)’의 이미지를 한국어에도 그대로 살릴 수 있을까? 한국인들의 경우 언어 관습 상 댓글 행위와 ‘물’ 간의 개연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므로 번역가들은 ‘댓글부대’, ‘댓글로 도배하다’와 같이 한국 사회에 더 친숙한 비유 방식으로 대체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또 하나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비유라고 생각하는 표현 중 하나가 중국어의 ‘种草’다. 원뜻은 영어의 ‘seeding’, 그러니까 ‘화초의 씨를 심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이 표현은 제품 구매를 추천하는 행위, 즉 좋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행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구매욕을 ‘草(화초, 풀)’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비유어 표현 세트로 ‘长草(풀이 자라다)’와 ‘拔草(풀을 뽑다)’도 있다. 전자의 ‘长草’는 ‘구매욕이 점점 커진다’는 것으로 일명 ‘뽐뿌온다(구매하고 싶은 감정상태를 뜻하는 신조어로 ‘뽐뿌’는 ‘펌프’의 일본식 발음)‘는 의미다. 후자인 ‘拔草’는 ‘구매욕이 해소되었다’는 뜻으로 사고 싶었던 물건을 이미 장만했거나 이런저런 사유로 기존의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경우에 쓰인다. 물건 구매 심리를 ‘풀씨가 심겨져 풀이 자라나고 마지막에 뽑히는’ 파종의 과정과 연결시켰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이처럼 ‘풀’의 속성을 사용한 중국식 비유를 한국어로 그대로 살려서 가져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어 사례를 하나 더 들자면 한국어에 ‘찰떡 비유’라는 표현이 있다. 비유가 유난히 기발하면서 빈틈없이 잘 맞아떨어질 때 쓴다. 누가 봐도 공감할만큼 착 달라붙는 비유어를 찰기가 높아 식감이 쫀득한 ‘찰떡’에 빗댄 한국식 표현이다. ‘떡’을 간식으로 즐겨 먹는 한국인들은 이런 상황에 왜 ‘찰떡’을 떠올렸는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이 온다. 이 밖에도 한국에서는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떡고물 떨어지기를 기대한다’와 같이 ‘떡’을 비유의 매개로 활용하는 경우들이 제법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유 형식을 ‘떡’의 식감이나 특징이 생소한 문화권에 그대로 들이밀었을 때 과연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가닿을 수 있을까?          




대개 각 언어권에서 보편화된 비유어들은 그 지역 특유의 생활방식과 사고기제,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지방식이 투영되어 관습적으로 굳어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A와 B가 닮은꼴’임을 비유할 때 한국어에서는 ‘붕어빵처럼 똑같다’라고 하는 반면 중국어에서는 ‘하나의 틀(一个模子)에서 나온 것처럼 똑같다’라고 한다. 그 외에 일본어에서는 ‘오이를 세로로 쪼갠 단면(瓜二つ)’에, 영어에서는 ‘꼬투리 안에 있는 두 개의 완두콩(two peas in a pod)’에 비유한다. ‘닮은꼴’을 설명할 때 갖다대는 비유어가 저마다 제각각이다.      


이렇게 동일한 대상을 두고 언어마다 채택하는 비유체가 다르면 번역가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도착어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하고 이질적이더라도 출발어의 비유방식을 그대로 이식할지, ‘비유’라는 포장을 풀어헤치고 의미만을 전달할지, 도착어 독자 맞춤형 비유로 새롭게 덮어쓰기를 할지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유어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해당 언어 사용자 사이에 공유되는 일상의 비유어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각 문화권에서 두 대상물이 상징적 관계로 성립될 수 밖에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도 파악해두길 권한다. 이를테면 특정 현상이나 개념을 왜 굳이 그 ‘비유체’로 표상했는지, 두 대상물의 유사성은 어디에 있으며 그 안에 작동된 언어 사용자들의 사고기제는 무엇일지 어휘 현상의 이면까지 파헤쳐보는 지적 호기심을 겸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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