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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새벽 May 24. 2024

#1-7. 거기서는 맞고 여기서는 틀린 어휘


프랑스어 ‘포자미(fauxamis)’는 서로 다른 두 언어 간에 형태나 소리는 유사하지만 실제 사용되는 의미는 상이한 단어 짝을 일컫는다. 영어에서는 일명 ‘폴스 프렌즈(false friends, 거짓짝)’이라고 불리는 개념이다. 이런 포자미 현상은 한자를 공유하는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에서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두 문화 사이에 걸쳐져 있는 ‘한자어’라는 교집합 덕분에 중국어를 전혀 모른 채 중국에 가도 한자 실력에 기대어 드문드문 의미 유추가 가능한 어휘들이 있다. ‘图书馆→도서관’, ‘学校→학교’, ‘动物→동물’, ‘植物→식물’, ‘博物馆→박물관’처럼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완전히 동일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그렇다. 


반면 같은 한자어지만 쓰임의 폭이 다르거나 전혀 다른 의미로 갈리는 경우들도 적잖이 있어서 오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특정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어휘가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면 틀린 용법으로 돌변하거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번역할 때도 이 지점에서 실수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간섭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번역가들은 한자라는 기호와 단서를 너무 맹신하지 말고 고정관념을 걷어내야 한다.      




한자도 같고 기본 개념도 같지만 활용 범주가 다른 경우들이 있다. 이를테면 한국어 ‘용납(容納)하다’는 흔히 ‘실수를 용납하다’, ‘이견을 용납할 수 없다’, ‘비리 행위를 용납하기 어렵다’ 등과 같이 쓰이며 ‘남의 말이나 행동, 어떤 상황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반면 중국에서 동일한 한자어인 ‘容纳’는 ‘다른 의견이나 행동, 인물 등을 너그럽게 포용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물리적 공간이나 조직 안에 사람이나 물건을 수용한다(혹은 감당하다)’는 함의도 있어서 활용 의미장이 한국어보다 훨씬 넓다. 그러니 ‘容纳’라는 어휘가 활용된 중국어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쓰임에 따라 ‘용납하다’를 그대로 쓸지, ‘수용하다’, ‘감당하다’, ‘받아들이다’ 등 다른 동사로 바꾸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那是不可容纳的谎言。 →그건 용납할 수 없는 거짓말이다.

停车场可以容纳300台车辆。→주차장은 차량 300대 수용이 가능하다(주차장의 주차 가능대수가 300대까지다). 





뿐만 아니라 한자만 공유할 뿐 한국어와 중국어 언어장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어휘들도 부지기수다. 일례로 한국어의 ‘합동(合同)’은 ‘둘 이상의 조직이나 개인이 모여 함께 행동하고 일하는 것’을 일컫지만 중국어에서 ‘合同’은 ‘계약’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또한 한국어에서는 생각,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때 완결 내용을 나타내는 최소 단위를 ‘문장(文章)’이라고 한다. 글이라면 문장부호가 찍히는 지점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중국어에서 ‘文章’은 완성된 한 편의 글이나 저작을 지칭하는 어휘다. 단위 자체가 다르다. 완결된 문장 단위는 ‘句子’라는 별도의 어휘가 존재한다. 거기에 더해 중국어 ‘文章’에는 ‘속뜻, 숨은 의도, 꿍꿍이, 속셈, 속사정’이라는 파생의미까지 얹어져 한자만 보고 무턱대고 덤볐다가는 실수하기 십상이다.    


这篇文章拖沓冗长。 

   이 문장은 늘어지고 장황하다(×) → 이 은 늘어지고 장황하다(○) 

他的话里大有文章。 

   그 사람들 말 속에 문장이 있다(×) → 그 사람들 말 속에 꿍꿍이(숨은 뜻)이 있다(○)     

    




예전에 중국 방송콘텐츠 심의 관련 규정을 다룬 중국어 문건을 한국어로 번역해 납품한 적이 있었다. 심의 과정 중 편집 혹은 삭제 대상이 될 수 있는 항목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宣扬’이라는 동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宣扬’ 역시 한국어와 중국어의 의미가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 어휘 중 하나다. 한국어의 ‘선양(宣揚)’은 ‘명성이나 권위를 널리 떨치게 한다’는 긍정적 함의를 지닌 반면 중국어에서의 ‘宣扬’은 ‘널리 알리다, 널리 떨치다’는 긍정적 의미와 ‘퍼뜨리다, 떠벌리다, 유포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내포하는 양면적 어휘다.       


宣扬消极、颓废的人生观、世界观和价值观;

       번역) 소극적이고 퇴폐적인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을 조장하는 경우

宣扬带有殖民主义色彩的台词、称谓、画面等;

       번역) 식민주의 색채를 지닌 대사, 호칭, 화면 등을 남용하는 경우

脱离国情,缺乏基本的现实生活依据,宣扬奢华生活。

       번역) 국가 정세에 어긋나고, 현실적 근거가 결여되거나 호화 생활을 부추기는 경우     


위에 언급된 사례의 경우 후자의 부정적 의미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한국어로 옮길 때 ‘선양하다’는 한자어를 그대로 차용하면 목적절과 호응이 되지 않을뿐더러 원문과 상반된 취지로 전달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래서 형태의 등가는 유보한 채 각 문장의 문맥에 따라 ‘부정적인 요소를 퍼뜨린다’는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제3의 동사(예: 조장하다, 남용하다, 부추기다, 유포하다)들로 각각 대체했다. (물론 이건 필자 개인이 당시 그 맥락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해서 실행한 결과일 뿐, 번역가에 따라서 각자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있겠다)      




이처럼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에서 한자는 의미를 유추하는 단서가 되기도 하지만 정확한 의미 판단을 흐리게 하는 복병이 되기도 한다. 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같은 한자 어원에서 출발한 어휘라 해도 긴 세월 이식되고 사용되어 온 공간과 시간의 형태가 다르니 사용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번역가들은 잊지 않고 계속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거짓짝 어휘의 간섭에 걸려 민망하고 머쓱한 번역어를 끼워맞추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 똑같은 형태를 지녔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는’ 어휘들이 있는가 하면, 사용 공간이 달라짐에 따라 ‘여기서는 틀리지만 거기서는 맞는’ 어휘들도 있음을 늘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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