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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냥이 Sep 24. 2022

에필로그


겨울온기 (2021.11)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


나는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프라인은 물론이고 온라인에서도

그 흔한 SNS 조차 하지 않았다.

사진 찍는 건 좋아하지만 그냥 나 혼자 기록용으로 남길뿐 어디에 올리려고 찍는 것도 아니었다.

SNS는 나에겐 별 의미 없는 자기표현 방식이었다.

뭐..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림은 좋아했다.

취미 삼아 그리거나 지인들 부탁으로 그렸던 그림들을 기록할 공간이 필요했다.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곳에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들어가 보긴 했지만 그 계정으로 유명해져야겠어!라는 생각을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거의 뭐... 방치된 곳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생겼다.

배꼽 아래 대장 부근에 뭐가 만져져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암이라고 했다.

이렇게 나 죽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6살, 둘째가 3살. 애들 걱정에 며칠을 속으로 울었다.

병원을 옮겼고 조직검사를 했고 검사 결과 경계성 종양 진단을 받았다.

주먹만한 근종 덩어리라 수술은 불가피했고, 10센티 넘게 배를 가르는 수술을 했다.

암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그 수술은 충분히 견딜만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모임엔 잘 가지 않고 인간관계를 쉽게 확장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암'에 걸린 줄 알았다가 아닌 경험을 하고 나니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때부터 너무 숨어서 살지 않기로 했다.

해보고 싶은 건 후회하지 말고 해 보기로 결심했다.

"아... 작가 한번 못해보고 죽는구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방치된 그 계정에 그림과 글로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일기장에나 써야 할 법한 오그라드는 이야기들도 신경 쓰지 않고 올렸다.

누군가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뭐 어때. 상관없어."


그런 생각들이 여기까지 나를 이끈 것 같다.

사실 막상 해보니 뭐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에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그림을 그렸고, 굿즈를 만들었고, 내 이야기를 썼다.

전시를 하고, 그다음 전시를 계획하고, 내년을 생각한다.

나는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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