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지요, 이렇게 쓰는 줄 3

했던 얘기들은 모두 돌아가고, 돌아간 뒤에는 없던 얘기가 되었다.

by 김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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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십 초 남았다. 뛰면 안 되겠나. 됐다. 네가 어떻게 뛴다 말이고. 여자는 먼저 뛰어갔다. 남자가 뒤따라갔다.


32. 곁과 결. 라이크와 러브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를 생각하면 라이크고 남을 생각하는 걸 러브라 하나.


33. 미니비숑. 토이푸들. 전문분양. 아이들이 몰려서 유리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 갓 태어난 것이 눈을 반짝이면서 왕왕 짖었다. 나는 왜 여기 있습니까. 여기는 빛나는 감옥 환한 곳에서 자꾸 비실거렸다.


34. 가이아에 대해 생각하다가 미래를 생각했는데 가이아와 미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건 그저 거기에만 있었으므로 쭉쭉, 거기에만 있었으므로.


35. 칼 세이건이 죽고 가이아가 태어났다. 그게 전부였다. 지구는 여전히 티 끝이었고, 별은 계속 멸망했다.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 사라졌다.


36. 우리가 우리는 바쁘다. 나는 나를 모른다. 언덕은 언덕 위에 있다. 시멘트는 시멘트다. 횡단보도는 보도다.


37. 신호 따라가는 거여. 이게 다 배차가 그렇게 나니까 그렇지. 책 대로 하면 멈추는 게 맞아요. 운행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니까. 시간이 없어서 그렇네요. 그럼 그게 잘못되었네요.


38. 공감은 핍진하게 이뤄진다. 꾸준하게 돌아간다. 점차 점진적으로 세상은 더 나아질지도 모르고, 덧날지도 모르겠네.


39. 서글픈 입장과 속일 수 없는 경우가 생겨났다. 슬프지, 슬픔만이 있었지. 기뻤네. 또 기쁨만이 있었네. 그런 경우는 잘 없으니까.


40. 구름이 꼈을 뿐 하늘은 늘 푸르렀다. 너머에는 자꾸 너머가 있어서 상상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혹은 어떤 사람이 되었나요?


41. 그러니까 서울로 가야지. 서울로 간 다음에는? 어쨌거나 서울로 가야지. 그리고 더 할 말이 없었다.


42. 했던 얘기들은 모두 돌아가고, 돌아간 뒤에는 없던 얘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정말 사라지는지 궁금했다. 정말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믿었다.


43. 마음 안고 좋아할 수 있는 것들. 긴장하지 말고, 어떤 진심으로 또 진심이 아니더라도 가장 근접하게.


44. 어떤 일은 일어나기만 일어나고 아무런 부연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지속하는 일과 질려하는 일의 반복이다.


45. 느린 속도로 구름은 흐른다. 흐르고 지나간다. 지나가다가 다시 멎는다.



ⓒ 김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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