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지요, 이렇게 쓰는 줄 4

당신 없이도 살 수 있는 날들을 준비해 두었다.

by 김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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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조영묵을 구속하자. 하는 구호 속에서 조영묵이 누구인지 보다 구속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구속될 수 있을까?


47. 나는 정치를 모른다. 나는 싸움을 모른다. 나는 평화를 안다. 나는 세월호를 안다, 아니 모른다. 나는 용산 참사를 겪어보지 않았다.


48. 우리는 무인식당에서 무인처럼 있다가 무인으로 나갔다. 밖은 너무 사람이 많았다.


49. 인사동. 고정 아가씨. 미스. 미시. 항시 대기. 저 네온사인은 언제쯤 없어질까. 없어져서 좀 안 보이게 될까.


50. 모여는 있는데 관계가 없다. 는 댓글을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말 그렇다. 버스에서는 버스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버스 안에 있다는 생각.


51. 지나치고 있는 무수한 전단지. 혹은 무수한 이야기들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


52. 외로울 때 힘들까. 힘들 때 외로울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힘들고 외로워졌다. 다행이었다.


53. 습관을 만든다고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난 나를 너무 믿는다. 어딘가로 몰아넣을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않는다. 지속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모든 게 전전긍긍이다. 낙차가 크다. 보폭이다.


54. 자주 넘어지다 보니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 했으므로 더 자주 넘어져야 했다. 종종 사라진다는 건 사라지지 않는 일보다 더 역력한 일이었다.


55. 아무도 불이 날 줄 물이 찰 줄 부서질 줄 모르고 재앙을 모르고 재앙 같은 건 일어나지 않고


56. 정말로 슬픈 건 그런 인간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투명함이 아무도 해하지 않고 올곧다 믿으며 끝내 주변 사람들에게 위해를 끼치는 인간. 그런 인간은 슬픈 인간이다. 뜻은 없고 동작만 있다. 살인 기계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57. 젊은 문제 나는 더 이상 대항하고 싶지가 않았다. 대항하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또한 미완인 날들이 할 수 있는 말도 있었다.


58. 당신 없이도 살 수 있는 날들을 준비해 두었다. 그날들은 너무 뒤척거렸다.


59. 리복 운동화가 꽉 끼는 장면. 운동화가 성장을 따라가지 못할 때. 발목은 자주 꺾이고.


60. 상 중이라는 단어가 자주 밟혔다. 오래된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자주 안녕이었다. 사라지거나 부서지기도 했다. 전부였다. 전부가 아니라 뒤처지기도 했다.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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