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연 뒤 뒷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뒤를 돌아보는 마음.
61. 벨을 누르고 기다렸다. 버스가 멈춰야 했다. 멈춰야 내릴 수 있었다. 기사는 버스를 멈추지 않았다.
62. 니트를 입고 햇살을 쬐는 게 좋다. 부드러워지고 말랑말랑해지니까.
63. 김학윤은 끝과 끝이 부딪친다. ㄱ ㅣ ㅎㅏㅇㅠㄴ. 그렇게 발음하고 나면 안심이 될까. 믿게 되나. 믿음의 반대에 서 있게 되나.
64. 희망의 자격이라는 제목의 시를 쓰려면 희망을 먼저 떠올리나 자격을 먼저 떠올리나
65. 문을 연 뒤 뒷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뒤를 돌아보는 마음. 그런 마음을 자꾸 품어야 한다고.
66. 오토바이가 다른 오토바이 보다 빨리 가기 위해 빨리 달리는 건 아닐 테다. 바빠서 그런 거지. 도로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다.
67. 암묵적 허용과 예외. 그림자 걷기와 그림자 빼기. 자격과 결단의 비유. 다른 말과 깨진 말의 조화
68. 나는 나를 보호하는데 힘을 쏟는다. 과거의 내가 똑바로 자랐어야 지금의 내가 올바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지점은 여기서 발생한다.
69. 사랑과 훈육이 붙어있는 건 간단하기 때문이다. 훈육은 쉬워 보인다. 사람은 원래 악하다. 성악설을 여기에 덧붙이면 이상한가.
70. 자라면서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어릴 때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는 어른이었으면 했다. 지금 나는 성인이다. 법으로 명시한 선을 넘긴 인간이 되었다.
71. 쓸모와 의미는 구분되어야 한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이 아름답고 의미 없기를, 로 바뀔 수 없다. 아름다운 게 의미가 없다면 시는 큰 힘 하나를 잃게 되는 거니까.
72. 단편 소설집. 단편 소설집이 아니라 단편 엽편집. 그럼, 단편 엽편집. 엽편은 어려우니까 초단편소설집. 초단편 소설집. 이름 가지고 더 장난칠 생각하지 말자. 원고를 다시 보자. 할 수 있나. 할 수 있도록 하자.
73.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 그렇다고 믿는다면 그 또한.
74. 사람은 약하지만은 않네. 않아서 않네. 이렇게 쉽게 주저앉지도 않네. 기다리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쪽으로.
75. 퉁퉁거리면서 벙벙 거리면서도 사람이 있는 쪽으로 가려한다. 날이 좋으니 오늘도 멸망하진 않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