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지요, 이렇게 쓰는 줄 7

속된 말로 이렇게 개같이 살 바에야 죽는 게 낫다고 봤다.

by 김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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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유리병에 넣어둔 편지를 바다에 던진 뒤 그 편지가 수취인에게로 도달할 확률로 사람은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92. 자일리톨이 그리스에서 난다고 믿는 사람이 실제로도 많았다. 사실일까. 사실이라는 말만큼 확실한 말도 없었으니 다들 사실을 주장하고서 나섰다. 그러고 보면 사실을 주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거짓이 생산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눈치채지 못했다.


93. 백목련. 적목련. 유자. 개나리. 라넌튤라스. 라벤더. 국화. 안개꽃. 이런 꽃들을 말리면서 언제 바스러질지 생각했다. 언제든 바스러질 수 있었다.


94. 자주 침대 위로 올라왔다. 무서운 일들의 반증으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95. 속된 말로 이렇게 개같이 살 바에야 죽는 게 낫다고 봤다. 그러나 죽을 수는 없었다. 죽기 전까지 개같이 살 때보다 더 아플 듯했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그런 고통이 계속될 듯했다.


96.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너무 불안정해서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지 않으면 그만 무너져 버리거나 휘둘릴 게 뻔했다.


97. 실거미를 누르고 실거미가 사라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점멸입니다. 전멸입니다.


98. 나는 내가 필요할 때만 죽고 싶은 아이. 필요할 때 죽을 수 있다면 기쁘고. 그렇지 않다면 어색할 듯합니다.


99. 기록에 의미를 두는 건가요. 이 기록의 쓰임에 의미를 두는 건가요. 지독한 새벽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100. 사람이 기어코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사라졌습니다.


101. 기업체 미화 여사님 구합니다. 창문에는 창문이 어려 있었습니다. 모래가 반듯하게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102. 나의 반려에게. 내가 생각하는 모든 반려들을 향해 말을 꺼내야 했다. 반려자라는 말. 그런 제도.


103. 매듭 하는 일은 매듭 하는 만큼 더 잘할 수 있던 게 아닐까. 풀리기를 기대하면서도 기대하지 않는다.


104. 철봉에 오래 매달려 있어야지. 너를 오래 안고 있어야지. 말을 한 만큼 힘이 들어갔다.


105. 조급한 건 느낌뿐. 실제로 움직이지 않으면 물러서는 거. 애쓰지 않고 애달프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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