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너무 많은 소리가 넘어오니까.
121. 당신을 묻은 날 말간 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오래된 작별. 나는 개운해졌고 새 사람이 된 듯했다. 두려워졌다.
122. 명징한 경우. 좌우를 가리지 않는 습관. 다르게 가고 다르게 하고 시험하면서 무결해지고 같아지면서
기어코 무릇해지고.
123. 방향이나 속도 정해봐야지. 방향이나 속도 정해도 안 되지. 안 되. 와 안 돼. 도 구분 못하면서 말이야.
124. 기침을 오래 했다. 증상이 있으니까 병원에 가봐. 들어도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125. 아무래도 무서워져서 무서워지지 않게 보호하는 게 아니라 나는 밤거리를 걷고 싶을 뿐인데요.
126. 눈을 감으면 금방 있어 그 밤 기억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해도.
127. 내리고. 장막이 치열하게 걷히고. 모든 일이 모두에게 희망사항이 되었고. 이뤄지지 않는 게 되었다.
128. 인생 개죽쒀서 너한테 먹여도 너는 잘도 속네 속아서 관두지를 않네. 시라는 게 뭔지 궁금하다가도 그건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라 여기네
129. 노래를 듣는다.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소리가 넘어오니까. 적어도 걷는 동안에는 줄곧 내가 원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은 걸까.
130. 여기는 넓고 학교는 비어있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누군가가 잠깐 무너트리기 쉽다. 잠깐 다녀가기 쉽다.
131. 똥 싸면서 폰 놓기를 포기할 수가 없다면 메모하는 습관이라도 가지자. 가급적 오래 앉아 있기 힘들 테니까.
132. 말을 많이 하고 싶으면 말을 많이 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정말로. 왜냐하면 말을 하지 않으면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133. 원하는 일을 두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편집자는 괴로운 일일 수도 있다. 만지기 힘든 책이나 만지기 싫은 책도 만져야 하지 않을까.
134. 두루 쓴다는 거 읽거나 괴로워하는 순간이 있다는 게 이따금 삶을 생생하게 만들기도 한다. 깨지고 싶다. 박살 나고 싶다. 내가 두르고 있던 생각들이.
135. 마시고 놀고 내던지는 삶. 아무도 행복이라는 걸 쉬이 예단할 수 없으니 오늘도 가야겠지. 꾸준하게 벗어나야겠지. 싶다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