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장보기
가끔 멀리 가는 드라이브로 수원이나 안산에 간다. 수원은 화성 인근을 산책하고 마주한 여러 시장을 구경 갔다가 통닭 한 마리를 간식으로 먹는 코스이고, 안산은 베트남 쌀국수를 한 그릇 먹고 다문화 거리 시장을 구경 갔다 내키면 제부도까지 바다 구경을 가는 코스이다. 시장에 간다.
여행길의 시장이 매력적인 이유는 ‘노상 路上’이기 때문인 것 같다. 걷던 길을 이어가면 나타나고 또 이어진다. 거리의 모습이 이어지고 계절과 어우러지는 생활의 모습이 드러나는 곳, 시장.
겨울엔 춥고 눈이 오며, 여름엔 덥고 비가 오고, 해가 나고 바람이 분다.
편리의 기준에 맞추려면 불편한 것이 되니 자주 이용하는 고객들과 상인들을 위한 방식들이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그러한 것들이 시장이 갖춰야 하는 경쟁력으로 얘기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생각되는 변화의 기준이 대형마트 등에 맞춰져 있는 '비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름의 '시장만의'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시장은 새롭다. 철마다 다른 재료들이 가게 앞에 놓이고, 포장되지 않은 재료들의 ‘남 다른 스케일’에 놀란다. 나는 다루지 못하는 저 식자재들을 사람들은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인가. 조금 만만해 보이는 것은 사 가지고 온다. ‘주로 사는 것’ 이 있지만 이럴 때는 ‘조금 다른’ 것이 통한다.
시장은 한없이 개인적이기에 개개인의 상황이 시장에 드러난다. 경험 많은 시장 상인들, 오래 생활해온 동네 주민들의 정보가 축척되지 않은 시장은 있을 수가 없다. 시장의 노하우는 까탈스러운 개인들에게 맞춰져 있다. 그래서 정형화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봉준호 감독을 통해서 알게 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가 시장에서도 통할지 모르겠다.
여름이면 주문진으로 여행을 가곤 했는데, 작년과 올해는 가지 못했다. 가면 시장에서 생선을 잡아다 숙소에 있는 바비큐 통에 넣고 훈제를 만들어 먹었다. 바다가 이어지고 골목이 이어진다.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나가 한 바퀴 둘러보고, 새우튀김을 하나씩 먹고 돌아왔다. 어김없이 제철 생선이 가게들 앞에 놓이고 줄지어 이어진다.
교토에 여행 간 적이 있었다. 유명한 니시키 시장에 가서 골목 곳곳을 둘러보고,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잔뜩 잡아다 숙소에서 먹었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따뜻한 물에 두부를 대치고, 홍차 한잔을 우려 밥에 붓고 연어알과 야채 절임을 올려 먹었다.
집 앞에 작은 시장이 있다. 어쩌다 보니 제일 가까이 장 볼 수 있는 곳이 시장이다. 시장에서 사는 것이 있고 주변 마트로 가는 것이 있다. 여느 때 보다도 시장을 편하게 활용하고 관찰하고 있는 것 같다. 시장을 이용하는 동네 주민을 살펴보면, 사실 각자의 집에서 오랜 기간 살림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는 담당자들의 선택 기준은 명확하다. 제 철, 신선하고 적당한 가격의 질 좋은 것을 구입한다. 주로 구입하는 품목이 다르지만 선택의 기준은 비슷하다. 시장의 품목은 날 것, 단순하고 담백한 것이 많다. 그래서 더 질이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조건 싸다고, 아는 사람이라고, 이야기와 정에 이끌려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매서운 눈썰미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고 있는지 알아채야 한다.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면 힘든 곳이 또 시장이다.
파 한단을 사서 집으로 오는 황단보도 앞에서, 야채가게에서 본 아주머니가 슬쩍 묻는다.
“그래서, 파 한단에 얼마에요?”
“삼천원이요.”
“많이 올랐어.”
젊은 상인들이 하는 정육점이나 과일가게도 있었고, 요즘 몇몇 가게는 어른들이 하던 것을 젊은 상인들이 이어받고 있다. 폭이 넓어진 방식들을 기대한다. 각자가 하고 싶은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장’으로 이용될 수 있을까?
* r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집 질병관리본부장 이게 어찌된 일이야!”
“우리집 날씨관리본부장이 모르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