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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Dec 28. 2024

우연한 맛

배추 슈크르트

배추채 팬, 한가득

굵은소금, 통후추

매실소금절임 2-3개

올리브오일


 채친 배추에 소금, 후추, 매실절임을 넣고 올리브오일을 약간씩 넣으면서 볶습니다. 따뜻할 때 한 접시 담아서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2-3일 넣어두었다가 꺼내 먹었습니다. 볶은 배추를 보관한 것이어서 분명 절임인데 흘러나온 수분이 없습니다. 오래 말려져서 건조한 소금매실이 수분을 뺏어가면서 맛을 더하고 빠르게 배추 숙성을 도운 것 같습니다. 보기에도 그렇고 볶음의 흔적보다는 이건 완전히 절여진 배추인데 생배추는 아니면서도 매실의 새콤함과 향신료 후추까지 더해져서 본의 아니게 배추 슈크르트가 되었습니다. 고기와 곁들이면 아주 좋을 맛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슈크르트를 양배추 대신에 배추로 해도 좋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이걸 김치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사실은 접어두고 이건 사실 헹궈서 꼭 짠 묵은 김치 같다고 할까요. 매실이 독특한 역할을 했습니다.


매실배추절임


 이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하려면 얼마 전 소금이 떨어진 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굵은 바다 소금 한 포대 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소금통이 비었습니다. 소금이 꼭 필요한 순간은 피하고 있었는데 임시방편으로 매실소금절임의 소금을 떼어다 쓰기로 마음을 먹은 때이죠. 소금알갱이들이 잔뜩 묻은 10년 묵은 매실입니다. 이게 뭔고 하니, 삼거리 살 적에 만든 첫 매실소금절임입니다. 과감한 j답게 소금 양을 조절하지 않고 거의 소금 더미에 묻어두었던 매실이죠. 매실 향이 좋으니까 맛있게 먹었지만 확실히 짰고 먹는 요령이 없어서 남은 양이 많았기 때문에 그 해에 다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해가 돌아오고 새 매실을 절였기 때문에, 새 절임이 맛있었고 먹기 편해서 이 첫 매실들은 용기에 담겨, 비닐에 담겨 부엌 장의 구석구석으로 보내졌었습니다. 그것들은 10년 동안 말라갔고 표면에는 소금알갱이들이 맺혔습니다, 먹다 보면 안에 소금결정이 씹히기도 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소금을 모아서 요리에 쓰려던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매실소금이죠.


10년 묵은, 소금에 절인 매실

 

 원래는 소금만 쓰려고 챙겨 꺼내 놓았던 것인데 며칠 전에 소고기 장조리를 할 때 맛을 주려고 하나 넣어보았습니다. 양지와 무 덩이, 간장 그리고 매실, 거기에는 마른 바질도 더했었는데 맛이 환상적이었죠. 제가 했지만 아주 잘했습니다. 그렇게 묵은 매실의 쓸모를 찾아서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더니 j가 배추볶음 할 때 매실을 넣는 게 아니겠어요. 당연하게 맛있었습니다! 고소한 배추볶음에 시큼한 매실맛이 추가되었습니다. 그 후로 몇 번을 매실 넣은 배추 볶음을 만들어서 먹고 있었고, 배추도 떨어지지 않게 있었기 때문에 자주 했습니다, 그랬더니 엊그제는 많은 양이 남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그걸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며칠이 지나서야 다른 것과 곁들여 먹을 생각이 든 것입니다. 뚜껑을 열었을 때 놀라고 말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그건 김치 같았거든요, 숙성된 오묘한 맛입니다. 더 김치에 가깝고 매실의 숙성이 잘 어울리게 시큼함을 더했습니다. 통후추도 빼놓을 수 없었죠. 보통 한번 빻아서 쓰던 후추인데 시장을 구경 다니다가 눈에 띈 후추 사장님께 (후추만 파시는) 사 온 후추는 통으로 먹을 때 맛있었습니다. 조금 더 신선한 맛이 들어있는 후추였습니다. 이것들이 다 어울려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걸 우연이라고 할지 필연이라고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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