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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10. 2022

신윤복 <월하정인>, 앙리 루소 <카니발 저녁>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 시대의 거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곳엔 글의 일부만 남기고 많은 부분을 삭제합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달은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항상 우리들 머리 위에, 우리들 가슴 속에 있다. 달 속에서 옥토끼는 불사초를 찧고, 달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수면 위에도 떠있고, 애주가의 술잔 속에도 담겨있다. 종교와 문학과 예술에서 달은 가장 강력한 상징이다. 만약에 달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시詩도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따뜻한 색깔로, 때로는 차가운 빛으로, 가슴속 꽉차는 둥근 원으로, 어여쁜 새색씨 눈썹 모양으로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재주좋은 화가들은 손닿지 않는 곳의 달을 자신의 화폭속으로 옮겨놓는다. 옛 조선의 화원들도 그러했고, 서양의 화가들도 달을 따오곤 했다.

 

우리나라의 기록에 등장하는 달을 살펴본다. 달은 대개 해와 짝을 지어 등장한다. 신라사회에는 일월 숭배가 있었다. 『삼국사기』는 신라가 문열림文熱林(제의 장소)에서 일월제日月祭를 시행하였다고 기록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연오랑延烏 세오녀細烏女(해와 달의 짝)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상고대의 고분벽화에서 해와 달의 그림이 발견된다. 상고대의 일월신앙은 고려조와 조선조를 거쳐 민속신앙에까지 이어졌다. 종교화 뿐 아니라 문학작품에서도 달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백제의 가요 <정읍사 井邑詞>를 알고 있다.  “달하 높이곰 도다샤/어기야 머리곰 비치오시라/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져재 녀르신고요/어기야 진 데를 드디올세라/어느이다 놓고시라/어기야 내 가논 데 점그랄세라.”라는 노래에서 달은 그리움의 정이 얽힌 마음, 지아비를 기다리는 여인의 빛이다.

그림에 그려진 달빛은 희부옇고 어슴푸레하다. 둥근 보름달이라도 해처럼 눈부시게 빛나지 않는다. 달빛은 어둠을 몰아내기 보다는 어둠의 일부를 밝히면서 어둠과 조용히 공존하다. 동서양 어디에서든지 그림 속에 들어앉은 애월靄月은 화가의 마음에, 감상자의 마음에 은은한 달빛을 선사한다. 푸르스름한 하얀 빛의 차가움, 부드러운 빛의 따뜻함, 이렇게 이중적인 느낌이 바로 달빛이다.  


사람들은 레오나르드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가 달의 모습을 가장 근사近似하게 그린다고 평했지만, 네덜란드의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1390-1441), 이태리의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 이후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달은 낭만주의 상징으로, 또한 많은 풍경화에서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1969년 7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첫 발을 내디뎠고, 그후 달의 모습은 면밀하게 파헤쳐져 더 이상 그림 속의 달이 아닌 실제의 달로 존재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달의 모습은 어떠한가? 과학 이전의 예술로서 달을 살펴본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216668&menuNo=200018

신윤복 <월하정인/혜원전신첩> 지본담채. 28.2x35.6cm. 간송미술문화재단소장. 국보135. CC BY공유마당.

 

"창외삼경세우시窓外三更細雨時 삼경에 창밖에는 가는 비내리는데,  양인심사양인지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리라." 조선의 문신 주은酒隱 김명원金命元(1534-1602)의 애틋한 이별에 대한 시의 시작 부분이다. 조선의 중종과 선조시대를 살아온 김명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1)의 문인이었다. <월하정인>에는 이 시의 둘째 연이 인용되어 혜원이 이 시구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라는 해설이 있다.  특히 그림의 절반이나 되는 공간에 배경으로 기와집만 그리고 글귀를 쓴 것은 드문 구도이기 때문에 여기 등장하는 그림은 시의 내용에 중심점을 둔 것같다. 


종이책 출간으로 설명 일부를 삭제함.



https://artvee.com/dl/carnival-evening#00 

앙리 루소Henri-Julien-Félix Rousseau <카니발 저녁Carnival evening> 1886. 캔버스에 유채 117.3 × 89.5cm. 필라델피아 미술관, 펜실베니아, 미국

 

하얗고 둥근 달 아래 신비로운 숲이 빚어내는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그림이다. 카니발 시즌이니 아직 새 잎이 돋기 전이다. 짙은 검은색 나무들이 철사같은 잔가지들을 드러내고 서있는 모습이 강한 인상을 준다. 나무는 숲을 이루고 있지만 루소의 일반적인 정글 장면과는 많이 다르다. 비평가들도 이 그림의 해석을 난감해했다. 

카니발 나들이를 다녀오는, 또는 나들이 길에 나선 한 쌍의 커플이 그림의 맨 앞에 배치됐는데 작가 루소는 이 그림을 '초상화 풍경'이라고 불렀다. 조선에도 '산수인물화'가 있는데 산수화 속 인물은 초상화처럼 정확하게 그리진 않는다. 그에 반해 <카니발 저녁>의 인물은 하이라이트 느낌으로 또렷하다. 이들은 남녀 모두 독특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원뿔 모자를 쓰고 남자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데 이는 남자 어릿광대 할리퀸Harlequin과 여자 어릿광대 콜롬비나Colombina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니라면 카니발 축제를 위한 분장일 수도 있다.

이 그림에는 루소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이미지가 그림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작가의 뜻은 무엇일까?   자세히 살펴보자. 검은 오두막 벽면에는 창처럼 둥근 구멍이 뚫려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얼굴이 보인다. 원의 전체를 얼굴로 생각하면 계란형의 하얀 색 얼굴 오른쪽(그림 왼쪽)면에 그림자가 진 모습같기도 하고, 원의 오른쪽 흰색을 공간으로 생각하면 왼쪽 어두운 부분은 검은 굴뚝모자를 쓰고 콧수염을 기른 남자의 옆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여기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오두막의 지붕(오른쪽)에는

뜬금없이 램프가 올라가있다. 숨은 그림 찾듯이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오두막에 사람과 램프가 그려져있는 걸 알 수 없다. 생뚱맞다. 이해하자면 이 엉뚱한 장난(?)이 바로 진정한 자유인 루소의 매력아닐까...

극히 적은 부분이지만 남자 양말의 파란색, 갈색 샌들, 여자의 밝은 분홍색 양말, 파란색 샌들은 전체적으로 회색과 검은색의 음영에 대한 선명한 색상의 충돌이다. 흰색 구름은 나무가지에 매달아놓은 듯하고, 흰색 검은색 조각구름의 모양새는 마치 초현실주의자의 구성과도 같다.

그 시대의 화풍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을 꾸준히 그려온 앙리 루소의 그림은 첫 눈에 사람을 확 끌어들이고, 차츰 뭔가 꼭 있을 것같은 설렘으로 그림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위의 그림 왼쪽부분 디테일.


그림의 주제는 달만도 아니고 연인만도 아닌 달빛 아래 연인들일 것이다. 월식의 밤 달빛 아래 손목조차 잡지 못한 채 멈춰선 신윤복의 연인과 만월의 달빛아래 팔짱을 끼고 걷는 루소의 연인 모습은 조선과 서양의 문화 차이일까?

신윤복의 <월하정인>에서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월식의 달, 시구에 나타난 새벽의 초승달, 어느 달이 맞는 것일까? 감상자가 그림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만나서는 안 될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의 안타까움에 젖어들면 그만일 것이다. 루소의 <카니발 저녁>의 해석도 난감하다는 평이다. 왜 그림을 해석해야 하나? 있는 그대로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자신의 감정표현을 문학가는 글로, 음악가는 리듬으로, 화가는 그림이나 조각으로 나타낸다. 예술가의 감정표현은 결과적인 작품이 자신의 감정 전달이다.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감상자들도 해석에 매이지 말고 ‘그냥’ 느끼면 좋겠다.


https://www.phaidon.com/agenda/art/articles/2017/september/06/how-galileo-saw-the-night-sky/  

Galileo Galilei, 달의 스케치, 1609, 갈색 잉크 및 종이에 물감, 20.8 × 14.2cm. 중앙도서관, 피렌체.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b/bd/Van_Eyck_-_The_Crucifixion%3B_The_Last_Judgment.jpg

Jan van Eyke <The Crucifixion; The Last Judgment> c.1440-1441. 메트로폴리탄 뮤제움, 미국

양면 패널중 왼쪽 패널에는 다빈치의 노트북에서 발견된 수십 년의  스케치보다 앞선  인물의 십자가 뒤에 어두운 하늘을 떠도는 달이 충실묘사돼 있다. 천체의 분화구 구멍이 있는 달을 실제로 가까이서 캡처한 것처럼 그렸다. 그린 왼쪽은 디테일 사진이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f/Giotto_di_Bondone_-_Last_Judgment_-_WGA09228.jpg

Giotto di Bondone, <최후의 심판> c . 1301-1306, 프레스코. 스크로베니 예배당. 파도바, 이탈리아. 왼쪽 그림은 오른쪽 그림 오른쪽 위쪽에 있는 달 그림의 디테일이다.


작가 알기

앙리 루소(Henri Julien Félix Rousseau 1844.05.21 프랑스 라발 출생, 1910.09.02 프랑스 파리 사망)는 미술공부를 독학으로 한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이다.

루소는 정기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4년동안 프랑스 군대에서 복무했으나 실전(멕시코 전쟁 1861–67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71)에는 참전하지 않았다. 한 번도 파리를 떠나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유명한 정글 장면과 이국적인 풍경은 그가 주장했던 신화적인 멕시코 경험이 아니라 파리의 식물원에서 관찰한 열대 동식물을 참고하여 그렸다.

1869년에 파리에 정착하여 세관에서 일한 그는 “르 두아니에Le Douanier (세관원)”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1884년에 루소는 파리 국립 박물관에서 복사와 스케치를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1885년에 세관을 그만두고 여관 간판을 그리는 등 잡일을 하며 자신의 그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지식주의를 허세로 보고 기피하는 성격이었다. 미술 평론가들에게 조롱을 받았지만 색채 화가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 후기 인상파 화가를 포함한 다른 현대 미술가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다. 특히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는 루소의 그림에 큰 매력을 느꼈다. 1908년에 피카소는 루소를 위하여 만찬을 주최했는데 이를 계기로 루소의 작품에 대한 지적 관심이 촉발했고, 그의 원시주의를 고급 예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많은 비판과 논쟁 속에서 19세기 말 파리의 엘리트들은 그의 작품에서 상징주의의 “쾌락주의적 신비화”를 이해한다고 주장했다. 1886년에 앙데팡당 전에 초대받아 원시 예술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1904년부터 1905년까지 호랑이 원숭이 물소와 같은 야생 동물이 있는 ‘정글 장면’을 그려 널리 인정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가치있다고 확신했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 집착했지만 자신의 구성을 통제하여 이질적인 관찰과 전체를 잘 조화시켰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여러 겹의 물감과 이국적인 보석 같은 색상을 만들어냈다. 나뭇잎 색을 50개의 서로 다른 초록색으로 칠할 정도였으니 그의 그림이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꿈 같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풍경화, 인물화, 알레고리, 이국적인 장면 등 전통적인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하면서 조롱과 감탄을 동시에 받았다.

학문적 예술가들과는 대조적으로 루소는 대중 문화(일러스트, 잡지, 소설, 엽서, 사진)에 대해 개방적이었고, 종종 강렬한 그래픽 품질과 극적인 주제를 자신의 작품에 통합했다. 그의 작품은 조직 밖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1873-1907),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1918),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1885-1941), 파블로 피카소를 포함한 젊은 세대의 전위 예술가와 작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노동계급 출신, 학문적 예술 교육도 받지 않은 앙리 루소가 어떻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 주변의 전위 예술가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놀랍다.


낯선 말 풀이

처네         – 조선시대 여인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려고 머리에 뒤집어썼던 옷.

애월靄月   – 아지랑이나 운무속에 있는 달.

근사近似   – 거의 같음.



1. https://sjw.history.go.kr/id/SJW-G17070150-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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