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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24. 2024

문화 차이와 자녀 교육의 갈등

독일생활 에피소드 

신나게 놀아라.

두 아들들의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생수가 지금의 한국 시골학교처럼 적은 국제학교다. 일본 학생들은 열 명 이상이었지만 한국 학생은 우리 아들 둘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과 1학년 아이들에게 어쩜 잔인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이들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였다. 

입학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방과후 활동 참여였다. 형제가 같은 그룹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한 번은 농구, 한 번은 축구, 한 번은 미술, 한 번은 밴드. 출석하는 닷새 중에 나흘을 각종 취미활동에 할애했다. 영어학원에 다니는 대신 밖에서 신나게 놀았다. 언어는 또래끼리 놀면서 저절로 익혔다. 욕설까지도. 

집에서 내가 한 일은 아이들 공부를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초청해서 놀게 해주는 일이었다. 아들의 친구들이 오면 먹을 것을 만들어 주고, 마구 떠드는 소음을 찡그리지 않고 견디고, 돌아갈 때는 또 놀러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아들 친구들은 자주 놀러왔다. 다들 똘똘하고 예의 바른 친구들이었지만 한국 엄마인 내가 보기엔 버릇없고 건방진 녀석들도 있었다. 

낯선 문화 속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과 가까이 하면 안 될 것을 어떻게 일일이 콕 콕 찍어서 가르친단 말인가. 아이들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한국 중소도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나로서는 외국생활중 아들들의 낯선 언행에 당황할 때도 있었다. 가끔은 가슴 뿌듯한 대견함도 있었고, 또한 눈살 찌프릴 일도 생겼다. 어느 날, 멀쩡한 청바지를 찢어 입은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까짓 일이 뭐라고. 엄마인 내가 그랬듯이 아들들도 외국 엄마들과는 다른 나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고, 불만도 있었으리라. 


집안 일과 용돈.

주말이면 유리창을 닦는 대청소를 하고, 마당의 잔디를 깎는다. 한국에서는 집안 일을 시키지 않았었지만 독일 집에서는 아들들이 집안 일을 많이 했다. 자기 친구들은 잔디를 깎고 얼마를 받았다는 둥, 유리를 닦고 얼마를 받았다는 둥 일과 용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이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이 집안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 대가로 용돈을 주지 않았다. 자기 집 일을 하는데 왜 돈을 받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족이면 당연히 대가없이 집안 일을 함께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아이들에게 그 점을 분명히 주지시켰다.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용돈을 주었다. 아이들은 미성년자이니 당연히 부모가 용돈을 줘야한다고 생각했다. 따지고보면 결과적으로 독일 아이나 우리 아이나 돈이 생기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일은 대가없이 하지만 일 안해도 용돈 주는 우리 집이나, 일하는 품삯으로 용돈 버는 외국 아이들 집이나 같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는데 어느 방법이 옳은 지 결론은 내지 못했다. 나의 방법은 아이들이 가족 구성원으로서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대가 없이 주는 부모의 사랑을 느낄 것이다. 아들 친구들은 스스로 노동하므로써 돈을 버는 자립심을 키울 것이다. 다를 뿐이지 옳고 그른 방법을 정할 수는 없다.


아이들은 돈을 어디에 쓰나? 뮌헨 시내에 나가면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 후겐두벨Hugendubel 서점에서 책을, 미디어 마켓에서 CD를 산다. 자투른Saturn 전자제품 가게도 빼놓치 않고 가는 곳인데 여기서는 오디오 제품과 컴퓨터 구경을 실컷한다. 학교에서 소풍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는 용돈을 넉넉히 줬다. 먹고싶은 것 사먹고, 사고싶은 것 사라고 아이들의 기대 이상으로 돈을 줬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돈을 안쓰고 그대로 가지고 왔다. 쓰라고 준 돈을 왜 안썼느냐고 물으면 두 아들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한다. "필드트립 안갈 때는 돈 안 주잖아요." 그렇다. 평소에는 괜히 돈을 줄 이유가 없으니까. 아이들은 이렇게 돈을 모아 음악 CD를 사는 것이 취미였다. 


어디까지 부모의 허락을 받나

우리 애들은 부모말을 거스르지 않는 착한 아이들이다. 말하자면 제 멋대로 하지 않고 무엇이든 부모의 허락을 받았다. 하지 말라면 거스르는 법이 없다. 하라면 순종하는 편이다. 어느 날 하교 시간에 아들이 전화를 했다. 친구네 집에 가서 놀다 와도 되냐고 묻는다. 그러라고 허락했다.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친구들이 영화구경 가자고 하는데 가도 되냐고 묻는다. 무슨 영화인지, 극장은 어디인지, 차는 무얼 타고 가는지, 같이 가는 친구는 누구누구인지, 집에는 몇시에 오는지, 다 확인을 하고 영화 재미있게 보라고 허락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별 말이 없었다. 평소같으면 자기가 본 영화 스토리를 신나게 떠들며 자상하게 얘기해줄텐데 그날은 조용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속으로 걱정이 됐다. 갈등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하교 후 친구집에 가는 것은 어떤 학생이든지 다 자기 집에 전화로 알린다. 정해진 시간에 안 오면 부모가 걱정하니까. 우리 아들은 "친구 집에 가도 돼요?"하고 묻는다. 외국 친구는 "친구집에 갖다 올게요."하고 알린다. 영화를 가도 되냐고 허락받는 전화를 거는 아들을 외국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였는데, '너는 도대체 나이가 몇인데 영화보는 것까지 부모 허락을 받느냐'는 시선이었다. 어쩌면 뭐든지 사사건건 허락을 받는 우리 아들이 좀 모자란 아이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제 멋대로 하지 않고 부모에 순종하는 내 아들이  덜 떨어진 아이로 보이다니! 


사춘기를 잃은 아들, 공부에 강박된 아들

작은 아들은 중1때 한국을 떠났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가끔 그동안 하지 않던 말대답을 했다. 죽은 듯이 방구석에 쭈그리고 있거나, 과장되게 부산을 떨었다. 여자 아이들에게서 인형을 받아오기도 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것이다. 그때 외국으로 전학했다.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동네도 학교도 모두 생전 처음 접한 곳이다. 낯 선 곳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기엔 어려운 나이였다. 한국에서는 스스로 처리하던 사소한 일들도 엄마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사춘기 반항'은 다른 아이들 이야기였다. 매일매일 빗나가지 않고 정해진 길을 걸었다. 부모로서는 아들이 사춘기의 거센 바람을 피하여 순조롭게 지나니 안심이었다. 가끔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성장과정의 통과의례를 다 겪어야하지 않는가. 저항하기도, 반항하기도, 곁길로 걷기도, 부모 애태우기도, 모두가 지나가는 길이라면 다 걸어야 하지 않을까. 혹시 분출되지 않은 응어리가 쌓이게 되면 나중에 예상치 못한 때 확 터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큰 불안은 아니었지만 가끔은 걱정도 하면서, 사춘기 티를 못내고 지내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낯선 땅에서의 첫 해를 넘겼다.

큰 아들을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문제를 푼다. 잠들기 전에 풀지 못했던 것을 꿈에서 풀었다는 것이다. 꿈에서 푼 답이 실제로 맞았다.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들이 공부하던 중 무언가 잘 안풀려 낑낑대면 우리 식구들은 '너 빨리 가서 자'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아마 잠든 것이 아니었을게다. 잠자리에 누워 계속 그 문제를 생각하다가 번뜩 답을 얻고 일어났을 것이다. 

독일 가서 아침에 아이를 깨울 때 "헬로 ㅇㅇㅇ!"하고 아이를 깨우면 자동기계처럼 벌떡 일어났다. 아침마다 일어나는 일로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한 번만 부르면 되니까. 어느 날, 별 생각없이 "ㅇㅇ야 일어나, 일어나야지."하고 아이를 깨웠다.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더니 느리적거렸다. 두 세 번 이름을 부르며 깨우니 그제서야 느리게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순간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한국말로 깨우니 저렇게 느리적거리는 아이가 '헬로'하고 깨우니 벌떡 일어난 것이 어찌나 가엾게 여겨지던지.


멀리 할 친구

아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많이 왔었다. 부모로서 당연히 친구들을 살펴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겉모습이니 옷차림이 특별히 괴상하지는 않은지 살펴본다. 앉음새도 눈여겨 본다. 소파에 단정히 앉는지, 바닥에 뻗치고 앉는지, 별것도 아닌 그런 자세에도 신경을 쓴다. 식사할 때 식탁예절도 눈여겨 본다. 함께 밥먹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지, 저 먹을 것만 챙겨 먹는지. 아이들 눈에 띨 정도로 이상한 눈초리로 감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어떤 친구랑 사귀는지 궁금할 뿐. 

어느 날, 막내아들은 한 친구와 절교했다. A와 다시는 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무슨 일일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우리집에 몇몇 친구들이 놀러왔었다. 한 친구가 미국으로 돌아가 다음 학기에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즐겁게 놀고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미국 아이 엄마가 데릴러 왔다. 그 아이가 제일 먼저 돌아갔다. 나머지 아이들도 부모가 와서 다 데려갔다. 

아들이 한 친구와 절교한 이유는 이렇다. A는 친구 엄마가 왔는데 일어나지도 않고 소파에 앉은 채 "헬로"하고 말더라. 그렇다. 어른이 왔는데 어떻게 일어서지도 않는가. 독일을 아주 떠나는 친구에게 문밖까지 나가 인사하지 않고 소파에 앉은 채 '바이"하고 말더라. 맞다. 문밖까지 따라 나가서 한번 끌어안아줘야지.

우리 아들도 무례할 때가 많다. 그런데도 무례한 친구를 봐줄수가 없는 모양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제 눈에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본다더니. 그 후 아들이 혹시나 나쁜 친구와 사귈까봐 노심초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 아들이 무례한 짓을 하지 않고, 타인의 눈에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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