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생활 에피소드
외국에 나가있으면 모두를 다 떠나와 한갓질 것 같지만 손님들이 심심찮게 드나든다. 제일 많이 온 손님은 아들 친구들이다. 회사 직원들, 친정 식구들, 시집 식구들이 다녀갔다. 처음엔 학교에 우리 아들 둘만 있었는데 1년 후에 한국학생 4명이 또 들어왔다. 그 가족들도 종종 와서 함게 바베큐 파티를 하곤 했다.
전통 한국의 맛도 제대로 내지 못해 그저 흉내만 내고, 독일 음식 맛도 겨우 시늉만 내는 나의 요리는 항상 아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모국에서 온 방문객들에게는어설픈 현지 요리로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했고, 외국인 초대손님에게는 한국음식을 슬쩍 변화시켜 대접하며 ‘한국의 맛’에 대한 찬사도 받았다.
독일의 큰 도시에는 한국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한국식품점이 있고, 아시아식품점이 여러 군데 있어서 필요한 식품을 구하는 데 불편은 없다. 독일마트에도 한국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신선식품들이 있다. 그러나 늘 “2프로 부족”했고, 모국의 맛과는 달랐다. 밀가루 풀국을 끓여서 청경채로 열무김치 흉내를 내고, 래티시를 사와서 피쉬소스로 총각김치를 담는 식이다. 그곳 무는 너무 물러서 콜라비로 깎두기를 담았다. 쇠고기 국물에 파와 당근 잎을 넣어 육개장을 끓여 먹었다. 우리집 정원엔 민들레가 많아서 봄철엔 민들레 나물을 실컷 해먹었는데, 그집에서 이사 나올 때는 정원의 잔디를 다 망가트려놨다고 잔디를 새로 까는 비용을 부담해야했다.
아들 친구들이 오면 고기 위주로 요리를 해준다. 돼지불고기와 피클 비슷한 깍두기를 해주면 아이들이 잘 먹는다. 돼지불고기를 할 때는 토마토케쳡과 고추장을 8:2 비율로 섞어 양념하면 매웁다고 하면서도 잘 먹는다. 깍두기에는 약간 핑크빛이 돌 정도로 약하게 고추가루를 넣고 버무린다. 한국사람이 보기엔 입맛 돋구는 비쥬얼은 아니다. 우리는 뻘겋고 양념이 짙게 묻어있는 깍두기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외국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줄 수는 없다. 소불고기도 해주고, 김밥도 싸주고, 잡채도 볶아주고, 아들 친구들이 나에겐 제일 귀한 손님이었다.
회사 직원들이 출장나오면 연어졸임이나 돼지갈비를 주로 한다. 고기값이 싸기 때문에 양껏 많이 만든다. 생물 연어는 비쌌지만 늘 먹는 것이 아니고 가끔 사 먹을만 했다. 집에서는 한식으로 준비하고 독일 음식을 먹일때는 레스토랑에 가서 사먹는다. 한국에서 온 출장객들에게 한국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식재료도 다르고 양념도 약하게 하니까 한국에서 먹던 맛보다 못할 게 뻔하다. 젊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고기 위주의 독일 음식을 잘 먹었다. 우리가 권하는 메뉴는 뮌헨에서 유명한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와 맥주다. 우리의 족발과 같은 요리인데 돼지발이 아니고 발목뼈를 쓴다. 바삭바삭한 겉껍질을 모두들 고소하다며 잘 먹지만 노인들은 딱딱하다고 한다. 딱딱한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겐 슈바이네브라텐(Schweinebraten)을 권한다. 목살로 만들어 부드럽고 겉이 학세처럼 딱딱하지 않다.
아들들은 독일 음식을 좋아했다. 소세지는 마트에서 사다가 집에서 해먹을 수 있지만 슈바인스학세는 할 수 없어서 레스토랑에 가서 먹는다. 소세지는 주로 겨자소스를 곁들인다. 뉘른베르그 소세지는 '잠발(Sambal)' 소스를 찍어먹기도 한다. 잠발소스는 우리나라 고추다대기와 같다.
힌국사람을 초대할 때는 김치를 담근다. 배추 겉절이를 버무리고 물김치도 담근다. 열무김치를 흉내낸 물김치는 나의 시그니처 메뉴다. 빨간 래디시와 청경채로 열무김치 담그는 방식과 똑같이 하면 된다. 흰무를 썰어넣고 매운 고추를 넣어도 좋다. 아이들도 그렇고 나역시 외국음식을 별로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집에 손님이 없을 때는 한국음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지금은 독일 사람들도 마늘을 잘 먹지만 옛날에는 마늘 냄새를 싫어했다. 물론 독일 사람 모두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내 아이들이 학교에서 마늘냄새 풍기는 아이로 기피대상이 되지 않도록, 한국사람이 살다 나가면 집에서 마늘냄새 난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마늘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웃집에 실례될까봐 창문을 닫고 끓이는 된장냄새는 집안에 갇힌채 며칠씩 머물렀고, 맛있게 먹은 된장찌개 냄새가 집에 배면 그 맛과는 달리 우리가 맡아도 불쾌했다, 온바닥에 다 카펫을 깔았고, 커튼도 묵직하게 드리워진 집에서 냄새는 오래 갇혀있었다. 독일에서 알고 지내는 한국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이는 공감했고, 어떤 이는 뭣 때문에 그렇게 눈치를 보고 사느냐고 야단이었다. 자신은 먹고싶은 대로 다 해먹고 산다고 으시대면서 나를 핀잔했다.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쪼그라들어서 눈치보는 것이 아닌데, 그 당당한 사람의 핀잔에 속상할 때도 많았다. 내가 싫어하고 구역질나는 냄새가 있는 것처럼 내 이웃들도 익숙치 않은 된장냄새 김치냄새가 싫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건데…
가리는 것 없이 뭐든지 잘 먹고 지냈는데 입원중에 입맛이 변덕을 부렸다. 마치 임신중 입덧 같았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일이다. 오전에 입원하여 점심 때 식사가 나왔다. 평소에 잘 먹던 레버크뇌델수프(Leberknödelsuppe)다. 소고기 간과 허브종류와 빵가루를 섞어 둥글게 빚은 완자를 맑은 육수에 담아낸 국이다. 고소하고 맛있게 먹던 음식이다. 쟁반을 받자마자 역겨운 고기 비린내에 비위가 상했다. 아침도 못먹었는데 쇠간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빵은 또 왜그리 딱딱한지. 우리나라의 부드러운 우유식빵보다 거칠고 구수한 독일 빵을 더 좋아했었는데 병원에서 준 빵은 무척 딱딱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서러워졌다. 독일에 온 후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 먹고는 못살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독 한인간호사 M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M이 근무하는 병원의 독일 간호사가 한국 아이를 입양했다. 아이는 갓 돌지난 아기였는데 분유를 먹지않고 며칠을 울어서 고생했다. 그 간호사가 M에게 자기 아기를 어떡하면좋으냐고 하소연을 했다. M은 쫄쫄이 굶은 아기를 품에 안고 김치조각을 물에 헹궈 입에 넣어줬더니 아기는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고 김치조각을 오물오물 빨더라는 이야기이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 아닌가. 아기는 엄마의 탯줄을 통해서 받아먹은 김치맛에 익숙해졌었던 걸까?
음식은 그 종류를 다 꼽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사람들의 입맛도 개인의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맛이 좋다는 것은 객관적인 평가도 있지만, 내입에 맞아야 맛이 좋은 것이다. 여러 나라 식당의 메뉴판에 ‘가정식’ ‘할머니 손맛’ ‘엄마 손맛’ 이런 메뉴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에게 그 맛이 가장 익숙하기 때문이리라. 그 익숙한 맛이 우리들의 허기진 그리움을 채워주는 것이다.
이제는 돌아와 독일의 맛을 그리워하고 있다. 봄철이면 흰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스파라가스에 홀랜더소스를 듬뿍 부어서먹던 그 맛, 직화에 구은 고등어를 호두나무 그늘 아래에서 즐기던 그 맛, 돼지갈비를 한 짝 통째로 구워먹던 바비큐 맛, 그곳에서 그리워하던 한국의 맛을 제치고 그곳의 맛이 그리워질 때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노마드의 삶인가.
2024년 여름. 지인들과 함께 독일 뮌헨 아우구스티너 비어가르텐에서.
이제는 독일에 거처가 없다. 다음에 가면 호텔에서 묵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