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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25. 2024

외국어 콤플렉스

독일생활 에피소드 

외국어로 아기 달래기

임신으로 배가 볼록해서 이사온 옆집 프랑수아즈 엄마는 독일에 온 후로 해산했다. 프랑수아즈는 독일 유치원에 다닌다. 매일 엄마가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걸어서 등원시키고 오후가 되면 다시 유치원에 가서 딸을 데려온다. 폭우가 쏟아질 때도, 눈보라가 칠 때도 누구에게 부탁할 곳 한 군데도 없는 외국 생활이다. 바로 옆집에 살면서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폭우가 퍼붓는 어느 날, 한국 아줌마의 오지랖이 발동하여 옆집 문을 두드렸다. 아기를 봐줄테니 나에게 맡기고 다녀오라고 했다. 아기는 돌 지나서 걸음마를 시작하고 몇 마디 단어를 말하는 때였다. 프랑수아즈 엄마는 한 마디 사양의 말도 없이 "당케, 당케(고맙다)"를 큰 소리로 외치며 문밖으로 나갔다. 정말 고마웠을 것이다. 

마루에서 놀고있던 아기는 갑자기 엄마가 나가자 현관문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문을 만져보고 나를 쳐다보고, 거실로 와서 울음을 터뜨렸다. 안아줘도 소용없었다. 안고 흔들고 토닥토닥하고, 업어보려고 했으나 아이가 달라붙지 않고 버티니 혼자 업기도 어려웠다. 달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봐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한참을 울다가 제풀에 지쳤는지 울음을 그쳤다. 얼굴을 씻겨주었다. 

그날 내가 당황했던 것은 아기의 울음 때문이 아니다. 달래는 말, 언어 때문에 난감했다. 아기는 울고 무슨 말로 달래야할 지 몰랐다. 생각나는 건 "Don't cry"밖에 없었다. 당황해서 무조건 한국말로 아기를 얼렀다. 그건 내가 잘하니까.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었다. 그 나이에 맞는 수준의 영어책으로 배우고 공부했다. 유아들이 읽는 영어 동화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말배우는 아기와, 유치원 아이와, 초등학생 어린이와 영어로 대화를 한 경험이 없었다. 중학교 때 시작한 영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를, 이솝우화를 영어로 읽어본 적이 없이 중학생 나이에 맞는 스토리책을 읽기 시작했었다. 어른이 되어 영어로 대화를 할 경우에 역시 성인들이 대상이었다. 많은 단어를 외웠고, 짧은 문장의 소통에 큰 문제는 없었다. 

첫 돌 지나 말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아기를 어떻게 영어로 달래나? 말이 안나왔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전혀 생각이 나지않아 당황했다. 그 일로 '외국어 교육의 맹점'을 알게되었다. 어린 아이가 사용하는 몇 마디의 초보적인 말도 모르는 상황에서 열살 넘은 아이의 수준으로 출발하는 외국어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과정을 건너뛴 아이에게 중학교 국어 교과서를 보여줘 보라. 이해하겠는가?

외국어를 조기 교육하라는 뜻은 아니다. 중학생이든 어른이든 시작할 때는 유아들이 읽는 동화책으로 일상의 스토리를 익히면 어떨까?


말은 사전적 번역이 아니라 감정

이런 농담 들어보셨는지? 미국에서 유학하고 자리잡아 직장생활을 하는 한국인이 있다. 미국생활 10여년. 지적 수준도 높고, 영어도 현지인과 다를 바 없이 능통하다. 어느 날 치통이 심하여 치과에 갔다. 의사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어봤다. 물론 아프니까 병원에 갔지. 그는 많은 단어를 안다. 가장 쉬운 단어 pain에서부터 severe, throbbing, 이런 수식어를 사용할 줄도 안다. 단순히 terrible pain이라고 하면 의사가 다 알아듣는다. 그냥 toothache라고 해도 된다. 그는 아픈 상태를 자세히 말하고 싶었다. 욱신욱신 쑤신다, 계속 우리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영어문맹이 되어버려 말문이 딱 막혔다. 결국 그가 리얼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아야 아야야'하며 볼을 움켜쥐고 괴로운 표정을 짓는 것이다. 이건 우스개로 하는 소리다.

작은 며느리는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다. 한국어학원에서 배운 한국어 실력은 우수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말보다 더 정확한 어법을 알고 있다. 우리집에서는 "이걸 영어로 뭐라고 말하지?" 이런 문답놀이를 하곤한다.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고 이해하지만 영어 단어로 번역하지는 못하는 것이 있다. 고소하다, 비린내가 난다, 얼큰하다, 시원하다, 식사중에 이런 걸 물어보면 영어 단어를 생각해내느라 끙끙댄다. aromatic으로 고소한 맛이 표현되는가. 더구나 참기름맛과 들기름맛이 서로 다른데. 느끼한 맛이야 oily나 greasy로 통하지만 고소함이야 정확한 단어를 찾기 어렵다. 생선의 비린 맛과 물비린내를 우리는 구별하지 않는가. 같은 fishy가 아니니까. 


외국어 100점짜리 실력

독일어 학원 선생이 우리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진도 더디고 자꾸 틀리는 수강생들을 위로하는 말이다. '지금 거리에 나가서 독일사람들에게 여기 이 답이 뭔지 물어보라, 당신들보다 더 틀린다.' 이런 내용이다. 그건 맞는 말이다. 우리가 국어시험에서 모두 다 100점을 맞는 것은 아닌 것처럼. 외국어를 정확히 말하고 쓰지 못한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자기네 말인데도 제대로 못하고, 자기네 글인데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런 배짱으로 살았으니 내 외국어 실력은 지금도 요모양 요꼴.) 자신을 가지라! 미국 사람이 영어시험에 100점 못맞고, 독일 사람이 독일어 시험에 100점 못 맞는다. 열심히 공부한 한국인이 오히려 100점을 맞는다. 

파리에서 프랑스어학원에 다닌 한국 지인의 이야기다. 알다시피 어학원에 가면 면접을 하고 레벨 테스트를 하여 반 배정을 한다. 본인이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을 고르기도 하지만 레벨 테스트를 하는 것이 관례이다. 지인이 레벨 테스트에서 거의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고급반에 배정되었다. 잘못된(?) 출발 때문에 그는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한다. 고급반에 살아남지 못하고 결국은 중급반으로 옮겼다. 시험에 강한 한국 사람의 비애라고나 할까.

우리는 말을 배우는 데도 '연음'이라는 것을 글로 배운다. 물론 말을 병행하면서 배우지만. 비행기를 타면 물달라고 할 때 물을  '워러'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한국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 우유를 '밀크'라고 하면 못알아듣는다고 한다. '미역'이라고 해야 알아듣는다고.('미역'이 아니고 미역 비슷한 발음이겠지.)

독일있을 때 지인중에 옛날에 파독 간호사로 온 사람이 있었다. 독일에서 독일 남성과 결혼하고, 독일 직장에 다니며 수십년을 산 사람이다. 그 사람의 독일어 발음은 실제 독일사람 발음과 다를 때가 많다. 가끔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라는 생각을 했다. 신기한 일은 그 사람의 틀린 발음을 독일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정확히 발음하는 내 말은 잘 못알아들으면서. 억울했다. 내가 제대로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틀려도 통하는 말이 있고, 맞아도 안 통하는 말이 있다는 걸 체험했다.

아들 친구가 영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고 영어 구사는 완전히 영국사람 같이 말한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이 아이는 영국인이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로 중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학생 어머니가 방문 밖에서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금방내 짤렸다. 영어 발음이 이상해서 자기 아이를 못 맡긴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미국영어에 유창한 어머니였던 듯. 영국사람과는 대화를 한번도  안해본 어머니였던 듯. 


가족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

외국 사람과 간단한 대화는 나눌 수 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나, 읽은 책과 오페라 내용에 관한 이야기 등을 비록 더듬거릴 망정 말 할 수 있고, 다행히 상대방이 알아듣는다. 물론 많이 틀린다. 틀리거나 말거나 꿔다놓은 보릿자루 처럼 입 꾹 닫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 나만 그런지,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외국인과 둘이 있을 때는 아무 말이나 다 한다. 틀려도 아무 걱정이 안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이나 아이들, 한국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선 주저주저한다. 같은 한국사람이 있으면 더 편안하지 않을까? 아니다. 내 영어나 독일어가 틀릴까봐 신경이 쓰인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않고 머리속에서 완전한 문장을 정리한 다음에 말한다. 오래 살다보니 이젠 외국인 앞이든 한국인 앞이든 머리 속에서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라도 입으로 뱉어낸다. 뻔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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