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 뿔을 떠오르게 하는 모양의 비행기 조종대. 이를 엉거주춤 왼손으로 잡은 청년 푸름. 30분 전 그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활주로에서 이륙했다. 청년은 아직 대자연의 이치를 잘 몰랐다.
그저 자신이 가진 넘치는 에니지와 자원을 소모하며, 공중을 향해 가고 있던 것이다. 비행기 뒤로 생기는 비행운은 잠시 흔적을 남기는 듯하더니 사라지고 있었다.
오래된 하늘은 이런 청년의 모습을 교만하다고 생각하였다. 못 마땅했다. 그러므로, 그가 비행하고 있는 곳 근처의 공기의 흐름을 비틀기로 하였다. 곧이어 하늘의 대기는 자세를 바꿔 기지개 피기 시작했고, 그 결과 푸름의 비행기는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자연은 청년이 삶을 더욱 값어치 있게 사용하길 바랐다. 고로, 그의 좌익을 꺾어 세속의 이면으로 관통시키려 결심하였다.
흔들리는 비행기에 놀란 푸름은 왼손으로 성난 황소 뿔을 부둥켜 잡았다. 안 되겠는지, 양손으로 급하게 잡았다. 조종대는 앞 뒤로 거칠게 씨근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팔목은 긴장되어 단단해졌다. 팔뚝의 촘촘한 근육은 마치 피아노 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햇볕은 너무 시리다. 죽음의 선율은 놀람교향곡을 연주하 듯, 급격하게 요동친다.
짙은색 선글라스 때문에, 푸름의 눈 빛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꽉 다문 턱 근육에, 당황함이 보였다. 반듯하게 넘긴 포마드 머리는 단정하고 힙했지만, 이마에 있는 핏줄은 터질 듯했고. 송골송골한 땀이 흘러 자꾸 눈을 찔렸다.
보통 이런 심각한 터뷸런스는 주로 비 구름과 함께 동반되지만, 푸름이 맞닥뜨린 CAT(청천난류)는 그렇지 않았다. 하늘은, 맑고 아름다운 모양을 띄고서 비행기를 세차게 흔들고 있던 것이다.
지상에서 그의 비행교관이 다급 무전한다.
"푸름! 비행기 수평! 기수 낮춰!"
독일인 교관은 강한 영어 악센트로 외치지만, 당황한 푸름은 이 무전이 들릴 리 만무하다.
황소는 참을성 없이 세차게 싸움 걸고 있었다. 왼쪽 뿔을 있는 힘 것 들어 올리려고 하더니, 갑자기 목을 비틀어 오른쪽 뿔을 하늘로 쳐든다.
지금, 푸름의 양손에는 본인의 생사의 고삐가 쥐어 있다. 잠시 지쳤는지, 움직임이 살짝 멈췄다. 이때, 푸름이 힘주어 양 날개 균형을 맞춘다.
"됐다."
푸름은 오른손을 떼어 서서히 스로틀로 옮긴다. 등 뒤에서 칼을 뽑는 투우사처럼 움직인다. 침착하게 움직려는 찰나, 돌풍은 비행기를 세차게 흔든다. 엔진 결국 추력을 잃는다.
마침내 비행기는 바닥면을 하늘에 보인다.
푸름은 눈을 감고 중얼거린다.
'일만 천 그리고 하나, 일만 천 그리고 둘,
일만 천 그리고 셋.'
[A-2 여객용 항공기]
나는 비행기가 되었다.
그때, 이후 나는 그토록 원하던 비행기가 되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다. 첫 솔로비행에 청천난기류를 만났고, 비행기가 양력을 잃어 추락 중이었다. 비행자세를 회복하는 리커버리 조치를 취했던 것까지 기억난다. 침착한 태도를 위해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까지 셌는데... 이후 기억이 없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깨어보니 인천공항이었다. 내 모습을 살펴보니 살짝 놀랍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조종석 윈드실드는 까맣게 너구리 선글라스처럼 칠해져 있고, 코에 달린 기상레이더 돔의 콧대는 뭉뚝 하지만 옹골차고 야무졌다. 겨드랑이부터 허벅지까지는 네모나고 동그란 창문이 달려있었다. 나는 내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이 작은 창문들을 통해 수평의 태양광선이 기내에 노을공연을 만들고 있었다. 햇빛이 내부에서 산란해 비추는 기내좌석. 그리고 겔리에 정리된 카트의 깔끔함과 아담함. 이 많은 좌석에 앉은 한 사람, 한 영혼마다 기대를 가득 담고 탑승할 것이 내 눈에 그려졌다. 엔진은 날개에 비해서 조금 크고, 엔진 바람개비 날개가 20개는 물결 지어 기하학적인 매력을 띄고 있었다.
'아!나는 AIRBUS 321 항공기가 되었구나.'
빨아들이는 매력을 갖고 있는 여인의 눈꼬리처럼, 양쪽 날개는 살짝 올라가 있다. 샤크렛 윙렛이다. 날개 앞으로 각각 5개의 슬렛 뒤쪽으로 5개의 스포일러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광배근은 닮을 플랩은 탄력 있는 근육을 마음 것 뽐내며 지면으로 30도까지 펼쳐진다. 단단한 두 다리! 아니 두 개의 튼실한 랜딩기어에 타이어가 한 짝씩 붙어 있다. 꼬리에 달린 보조엔진은 굉음을 내며 공기를 흡기하고 있다. 꼬리의 파란 페인트는 어찌나 광이 나던지, 지면의 노란 유도선을 빨아들이며 반사하고 있다.
'쩌는데?'
하지만, 그렇게 딱 하. 루. 만. 좋았다.
[A-3 비행기의 삶]
춥다.
밤에 돌아다니는 건 너무 힘들다. 오늘은 벌써 3번째 비행이다. 집. 아니 주기장에 가면 몇 시간이나 쉴 수 있을까? 다섯 시간만 정비고에서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대기는 영하 40도 이고, 달빛이 많이 눈 부시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나은 편이다. 지난번엔 기장이란 놈이 구름에 날 정면으로 달려들게 했다. 진짜 그 수증기 속으로 들어가면 얼굴이 시리다 못해 감각이 없어진다. 양팔은 바람을 못 이겨 덜덜덜, 겨드랑 아래 옆구리가 너무 아린다.
오늘은 캡틴이란 사람이 양반인 거 같다. 구름은 살짝 스친 적도 없다. 이것만 잘 피해도 날개에 얼음 걱정은 없다. 참 잘 피해서 조종하다니, 진짜 진짜 젠틀맨이다.
오늘은 오키나와행 비행이다. 인천에서 두어 시간만 가면 그를 볼 수 있다. 설렌다. 조금만 있으면 그 정비사와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와는 지난번 새 충돌 사건 직 후 처음 만났다. 오키나와에서 이륙 당시 새벽 무렵이었는데, 먹이를 찾아 활주로에 들어왔던 새들이, 갑자기 이륙하는 비행기에 놀라서 때로 움직인 적이 있다. 그중 한 마리가 안타깝게 내 오른쪽 날개와 부딪친 일이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를 급히 회항하였고, 이후 확인해 보니, 나의 피부는 아니, 스킨은 뚫려 있었고 새는 그 자리에서 박혀 있었다.
사람이 정의한 항공용어는 버드 스트라이크이다. 새와 부딪침이라고 한다. 너무 사람입장의 용어인 거 같아서, 새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바로 사망 교통사고이다. 비행기 발명 이전에는 온 하늘이 새들의 장소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공중에 자동차 길이 뚫려 이제는, 왼쪽 오른쪽 안 보고 날았다가는 한 순간에 치이고 마는 것이다. 새 야 미안해.
내가 그렇게 오른팔에 약간의 부상을 입고, 비행기 주기장에 돌아왔을 때 다. 나는 그 정비사와 처음 만났다. 나는 세상에 그렇게 꼼꼼하고! 똑똑하고! 아름다운! 정비사는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인간처럼 대우해서 말을 걸기 시작하더니, 아픈 상처를 살펴보고 만져보고 심지어 보듬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금방 치료해 준다면서 파손된 부분을 그라인더로 깔끔하게 잘라버리고, 보충제로 안쪽을 꼼꼼히 메우고, 실링으로 감쪽같이 마무리해 주었다. 능숙한 손놀림에 역시 프로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이 가관이었다.
본드가 잘 고정될 수 있도록. 회색 덕트 테이프로 붙여 주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예쁘게 잘라 붙여 줬다. 하트 모양으로 잘라서 붙여 줬다. 나는 덕트를 그렇게 앙증맞게 하트로 붙여준 경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