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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리날개 Dec 28. 2022

(2) 지상의 차량들

나를 아주 사뿐하고 젠틀하게 들어 올렸다

(이전이야기)

JM 은 비행훈련 중 난기류에 휩쓸린다. 혼신을 다해 추락을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다.

잠시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비행기가 되어 있는데...




[A-4 지상의 차량들]

  나는 비행기가 되었다. 양팔이 날개가 되고, 두 다리는 커다란 엔진으로 바뀌었다. 코에는 날씨 레이더로 비구름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고, 귀여운 꼬리날개가 생겨 엉덩이를 들썩거리면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전환이 가능해졌다. 마치 돌고래가 되어 하늘로 나는 기분이 든다. 


  지상에서의 삶도 나쁘지 않다. 인천공항 활주로에서 먹고, 자고, 씻고, 그렇게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신기하게도 연료를 주입하면, 배가 두둑해지고.

유리창을 닦으면 개운한 느낌이 들고. 정비고에 다녀오면, 마사지를 받은 마냥 몸이 가벼워진다. 


  오늘은 정비고에서 나와서 탑승동 주기장으로 견인 중이다. 인천공항의 많은 지상차량들이 좌우로 보인다.


  '오오. 지난번 인사했던 스텝카 가 보인다'


  저 스텝카 동생과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클럽에서 춤추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보니 스텝카가 되었다고 한다. 스테이지에서 스텝을 너무 신나게 밟다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아! 스텝카는 지상부터 항공기 출입문까지 계단으로 연결해 주는 차량이다. 작은 비행기의 경우 탑승문의 대략 높이가 3.5m쯤 된다. 너무 높은 까닥 에, 이 차가 없으면 손님이 탑승할 수 없다. 손님뿐만 아니라, 정비사, 조종사, 승무원, 농구선수, 배구선수도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다. 

  반면, 탑승동에서는 스텝카 대신 탑승교(브리지)를 이용하곤 하는데, 탑승교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둘러 배정받지 않으면 이용 불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승객들이 스텝카를 이용한다. 요즘 스텝카에는 천막이 있어서 차양 효과도 있고, 비도 잘 막아준다. 


  스텝카 동생과 눈이 마주친다. 슬쩍 눈인사를 하고, 계속 이동한다. 지상의 차량들은 다 사연이 있다. 뜨끈한 목욕을 좋아하는 디아이싱 차량,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급유차량, 롤러스케이트를 잘 타던 리프트 카.


  모두 우리 인천공항의 한 식구들이다. 오후가 되어 바닥이 달궈졌는지 아스팔트 열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갑자기, 먼지바람이 불어온다. 기껏 깨끗하게 씻었는데, 커다란 날개에 먼지가 덮인다.

'아우 속상해.'


  아참 지금 나를 끌어 주고 있는 차량은 푸시백카이다. 커다란 비행기를 견인하는 작지만 대단히 튼튼한 차량이다. 이 삼촌은 묵직한 외형과는 반대로 미성의 얇고 짜증 내는 목소리를 갖고 있는데, 요새는 날씨가 너무 더워 힘들다고 말한다. 8 월은 아스팔트가 너무 뜨거워 어디를 가도 타이어 바닥이 뜨거워서 곤욕이란다.

  또, 여름에는 휴가철이라 손님들이 너무 많고, 비행기를 미는데 무거워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푸시백 삼촌은 불평쟁이다. 항상 힘들다. 겨울에는 춥다고 해. 봄에는 황사 때문에 힘들다고 해. 황당하게도, 가을에는 외롭다고 옆구리가 시리다고 투덜댄다. 아우 이 노총각 삼촌 좀 누가 구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 삼촌 덕분에  날씨정보를 놓치는 적이 없다. 기상캐스터를 좋아한다고 했다. 자기 이상형이란다. 여하튼 북태평양 쌍저기압 조심하라고 한다. 라디오에서 이번 태풍은 심상치 않을 것이라며, 안전대비 잘하고 외출 시에는 채비 단단하게 하고 나가라고 한다. 

 "이번 태풍은 이상기온 때문에 강력한 우박을 동반하며..."

  말이 길어지는 푸시백카 삼촌을 뒤로하고, 뒷걸음질 친다. 빨리 이륙해야 한다고 인사한다. 아우 말이 어찌나 많은 지 저 푸시백카는 분명 사람이었을 때, 쇼호스트였을 것 같다. 끊이질 않는다. 

 "네 수고하세요!" 나는 대답하고 후다닥 뒷걸음질 쳤다.







  서쪽 활주로에 비행기가 많이 줄지어 있다. 다들 자기 순서를 기다리다가 하늘을 항해 힘 껏 날아오른다. 그 와중에 새들은 어찌 비행기를 피해서 저렇게 잘 나는지 모르겠다. 금방 유도로를 빠져나와, 활주로 34R에 도착을 하였다. 앞선 비행기가 출발하고 3분이 지나자, 관제사님이 나를 상냥하게 불렀다.

  "베르네항공 172, 활주로 정대하고 잠시 가다리세요"

  설렌다. 관제사님이 나를 보고 있는 것도 떨리고, 이제 곧 하늘로 다이빙할 것도 신난다. 

  "베르네 172,  이륙을 허가합니다."


  달린다. 노즈는 들지 않고, 활주로의 중앙선을 맞추어 간다. 왼쪽 오른쪽 엔진의 출력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유심히 주의를 살핀다. 기장님은 발로 러더를 조절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비행기 장 축을 꽉 잡는다. 

  "브이원! 로테이트"

  기장이 나를 아주 사뿐하게, 그리고 젠틀하게 들어 올렸다. 부드럽지만 민첩하게 노즈를 들었다. V2 +10 노트 속도를 유지하며 유려하게 올랐다. 꼬리 쪽에 앉은 데드 헤드 직원들이 제일 좋아한다. 꼬리 쪽은 항상 진동이 심해 허리가 아팠는데, 어머 오늘 뭐야 뭐야? 하며 놀란다. 언제 이륙했냐고 너스레 떤다. 나는 이륙하자마자,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이대로 앞으로 쭉 가면 좋겠는데, 조금만 더 갔다가는 북한이라고 한다. 저기 앞에 개성시내가 가까이 보이는 것 같다. 


  영종도를 뜨더니 비행기는 갑자기 기수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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