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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리날개 Jun 30. 2023

(3) 승무원 윤지

그리고 캄보아인 속헹

(이전이야기)

비행기가 된 어느 날. 지상차량 역시 모두 사연이 있는 것을 알았다.

토잉카 스텝카 디아이싱 차량 모두 인천공항에서 어울러 살고 있는데.




[B-1 윤지와 캐빈]


  승무원 윤지는 당황했다.  손님이 조심스럽게 무릎에 올려놓은 상자 때문이었다. 그냥 기내용 수하물인 줄만 알았는데, 상자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사람의 음성과 비슷한.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구관조였다. 탑승 전 승객 명단을 받았을 때는 기재된 내용이 없었다. 갑자기 없던 두통이 생기는 것 같다. 

  윤지는 손님에게 다가가 혹시 반입 신고 된 새 인지 물어봤다. 승객은 놀라는 눈치였다. 잠시 뒤 무언가 생각났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고 있던 새 장은 잠시 좌석에 올려놓고, 기내 위 선반에 손을 뻗어 가방을 꺼내려고 시도했다. 손이 잘 닿질 않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기 전에, 슬쩍 좌석을 발고 올라갔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발길에 부딪친 새 장은 자연스럽게 앞 좌석 쪽으로 기울어 넘어졌고, 하필이면 바닥 쪽을 향한 새장 문이 열리는 참사가 발생했다. 새는 기내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유황앵무는 자연에서 사냥꾼에게 잡힌 기억이었어 더욱 필사적으로 날았다. 애완조라기보단. 야생 동물에 가까웠다. 새는 소리를 지르며 비행기 내부를 잠시 휘졌더니, 결국 탈출구를 찾았고 그 길을 향해 훨훨 날아갔다.

  손님은 이제는 필요 없게 된, 멸종동물 보호 신청서와 수의사 증명서를 윤지에게 건네다 말았다. 윤지는 회사 다른 직원과 연락 후 행정 처리를 했다. 수의사도 비행기에서 내린 뒤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결국 다음 비행기를 타기로 한다.


[B-2 꿈의 발아조건 = 햇 빛 + 물 + 땅]


  비행기는 기내에서 한 탕 난동을 격은 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이륙했다. 윤지는 그래도 별 탈 없이 잘 마무리되었고, 이륙해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윤지는 이륙하는 순간 가장 좋다. 잠시 듀티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윤지는 압박 스타킹을 신고 있다. 요즘 들어 늘 몸이 붓는다. 높은 고도에서 오래 일해서 그런가, 기압이 부족하여 살을 꼭 잡아 붙잡아 주지 않는 느낌이 든다. 


  엔진의 흡기 압축력을 통해 들어온 공기는 수분이 부족하다. 그래서 장거리 비행은 힘들다. 비행기 구석에 있는 벙커에서 쉬었지만, 건조해서 인공눈물을 항상 갖고 다닌다. 저 갤리 창 너머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윤지는 취업 이후 처음 서울로 올라왔다. 친구들도 친척들도 없지만, 직업이 좋아 계속해서 머물고 있다.

윤지는 대학에서 캄보디아어를 전공했다. 사람을 닮은 크메르 문자가 좋았다. 대학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윤지가 승무원으로 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잠시 다녀온 워킹홀리데이에서, 비행기를 본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 사이에서, 비행기가 자그맣게 지나갈 때, 어렸을 적 꿈을 생각하였다. 엄마와 아빠를 잇고 싶었다. 그것이 저 넓은 우주를 비행하는 삶인 것 같았고, 곧장 한국으로 복귀해 면접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스펙이 높지 않은 윤지의 취업은 쉽지 않았다.



[B-3 죽방멸치]


  윤지의 엄마는 어려서 남해군으로 시집왔다. 아버지는 마을에서 유일한 어선을 물려받아 생계를 잇고 있었다. 마을의 생계가 달린 선장의 역할은, 아빠를 섬 안으로 붙잡아 두었다. 윤지와 엄마는 다행히도, 육지로 가는 다리 덕분에 고립되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섬에 사는 청소년에게는 많은 것 이 부족했다. 주변에 놀러 갈 만한 번화가도 없었고, 주변의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떠났으며, 학교에는 애정 없는 선생님들 뿐이었다. 윤지는 학원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한 시간 거리에 보통의 학원은 없었다. 그나마도, 인터넷 강의가 있는 것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주변 어른의 관심과 입시 정보가 부족한 곳이었다. 자연스럽게 윤지는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었다. 윤지의 가슴속 자존감은 썰물처럼 쓸려나갔고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열등감으로 들어차게 되었다.

 






[C-1 고용노동부]


  밤 새 날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손님들의 표정이 모두 피곤에 찌들었다. 아이들은 칭얼대며 운다.

여행의 설렘과 잠의 대결에서는 잠의 승리다.

  승객들이 하나 둘 하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손님이 내린다.

  "줴가 이 아름다운, 목도리를 가줘. 가(도) 되겠습니까?"

  캄보디아인 속헹은 어눌하지만 당찬 목소리로 승무원에게 물었다. 비행기 담요가 가볍고 좋은 듯 목에 감고 장난기가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거 목도리 아니에요. 그 담요 가져가시면 안 돼요~"

  승무원은 단호하지만, 친절한 태도로 속행 에게 대답했다. 승객 하기 맨 마지막 그룹이던 속행은 농담 투의 말로 이야기하였지만,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담요를 가져갈 것이면 미리 가방에 챙겼을 텐데, 아마도 그건 도둑질이라고 생각이 들어 그러지는 않기로 했다.

  "오 그렇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너스레를 떨며 담요를 내려놓았다. 지인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이 장난을 자연스럽게 넘겨주었다.

  속헹은 탑승구에서 조금 걸어 나와, 인천공항의 널찍한 환승 복도에 모여 앉았다. 함께 온 친구들은 프놈펜에서부터 만난 직업교육생들이다. 한 달 전 면접자리에서 처음 보았고, 2주 전 한국어 수업을 들으며 친해진 사이다. 


  속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희망으로-모영'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동내에서 마주친 고등학교 은사님이 한국 일자리 소식을 알려 주었다. 한국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고, 비행기값은 벌어서 지불하면 된다고 했다. 또 한 무료로 한국어 교육 가르쳐 주기 때문에, 이는 한국을 여행할 수 있는 굉장한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속헹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가수 ITZZ의 YUJI를 실제로 만 날 수 있다니. 막혔던 가슴이 서서히 미어 오는 느낌이 든다.


  어쩜 저렇게 하얗고 예쁠까? 어쩜 저렇게 기다랗고 섬세할까? 어떻게 해야 저런 여자를 만나 볼 수 있을까? YUJI는 그때부터 속헹의 꿈이 되었다.


  "선생님 그거 페이스북에 있어요? "


한국 워킹홀리데이 정보를 물어본 속헹은 집에 돌아와서 휴대폰을 바라보며 채용 공고를 확인하였다. 체류기간은 1년이고, 지방에 파견되어, 농장 업무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임금은 한국 원화로 240만 원, 주 5일에 9시부터 6시 근무 조건이 적혀있었다.

  갑자기  목이 담이 걸려 온다.

  휴대폰 충전기 줄이 짧아 벽에 삐딱하게 고개를 박은 상태로 화면을 보던 속헹은 자세를 고친다. 체류 기간 중 6개월 업무만 마치면 나머지 6개월은 자유롭게 한국 여행을 하며 즐기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이 공고는 한국 고용노동부에서 직접 제작하였기 때문에 믿어도 된다는 내용이 마지막에 적혀 있었다. 


  막내가 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듯 칭얼거린다. 

  '잠잘 곳도 제공하고, 식사도 제공한다고?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닌가?' 

  파리가 계속 괴롭히자, 막내는 결국 더 이상 짜증을 견딜 수 없었는지 울기 시작한다. 


  속헹은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가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막내를 품에 안고 달랜다. 괜찮다고 속삭인다. 커다란 사람 품이 그리웠는지 가슴속으로 더 파고든다. 막내가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C-2 타란튤라 사냥꾼]


  수도 프놈펜에서 북동쪽으로 300KM 떨어진 곳. 안롱크리 마을에 속헹이 살고 있었다. 속헹의 아버지는 타란튤라 사냥꾼이다. 거미를 숲에서 잡아다가 시장에 파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색 먹거리로 거미와 전갈을 튀겨먹곤 해서 시장에 내다 파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미 사냥일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익혔다. 속헹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속행을 데리고 숲에 나갔었는데, 경운기를 타고 숲으로 가는 길이 참 신비로웠다. 숲 속으로 가는 길에는 신비로운 새소리와 원숭이들이 지나가곤 했다.  가끔씩 무서운 표범들도 나타나는데, 아버지가 들고 있는 대나무 창이면 숲에서 무서운 것은 더 이상 없었다.  


  타란튤라는 땅에 구멍을 파고 산다. 아버지는 손으로 가리키며 구멍이 아주 크다고, 저기 안 보이냐고 설명을 해주지만, 어린 속헹이 보기에는 이파리만 무성한 수풀뿐이다. 잠시 후 아버지는 땅을 조금 파더니 털이 보숭보숭한 타란튤라를 잡아온다. 이빨을 뽑아 독을 제거하고, 병에 넣는다. 병 속에 들어있는 거미는, 이제 속헹의 장난감이다. 앞뒤로 뒤집고 거미를 놀린다. 


  어린 속헹은 아버지와의 행복한 시절을 추억한다. 어느 날 아버지는 기침이 많아 지다가, 한 달 만에 돌아갔다. 속헹의 조금 커서 초등학교를 마칠 때쯤 이였다. 엄마가 한없이 울던 소리가 기억난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지금은 속헹의 동생들을 데리고 숲으로 나간다. 

  거미를 잡고 병에 가둔다. 풍족하진 않지만, 제법 쓸만한 돈벌이가 된다.


  집에 새로운 화장실을 짓는 게 속헹의 꿈이다. 그리고, 둘째 셋째 동생이 잘 자랐으면 좋겠다.


  평소와 같이 경운기를 타고 숲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숲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동물들이 도망친다. 숲의 입구에는 못 보던 사람들과, 커다란 건설 기계들이 많다. 이 숲은 외국인에게 팔려서 더 이상 사용 할 수 없다고 한다.

  숲에 사용권이 있다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외국인에게 팔렸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다. 실랑이를 하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다른 숲으로 향한다. 

  실랑이 때문인지, 오늘 사냥시간이 너무 늦었다. 다른 숲에 가서 서둘러 거미를 잡고, 귀가한다.

  그날이 문제였다. 


  막내 동생은 거미를 갖고 놀던 중 타란튤라에 물렸다. 급하게 사냥을 마치느라 이빨 뽑은걸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막내 동생은 입에 거품을 물었고,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오열하였다.

  마을 사람들 모두를 붙잡고 호소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우리 막내가 위험해요"

  엄마는 동생을 잃고, 그때부터 계속 방에만 누워있었다.



[C-3 외국인 노동자]


"속헹!"

  고용노동부 사람이 괜히 군기를 잡는다. 공항에 쪼그려 앉아 있던 우리는 총 22명이었다. 인원수 확인을 마친 뒤 우리는 공항의 카펫 길을 넘고 또 넘어서, 검역 능선을 다다른다. 마침내, 입국 법무부 능선 앞에 섰는데, 줄이 길다. 

  법무부 사람들의 제복은 깔끔하고, 말투는 날카롭다. 

  "왓 퍼포즈 인 코리아....??"

  한국 사람들의 특유의 밋밋한 영어 발음으로 물어본다. 속헹은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구분할 수 없다. 

  속행은 그래도, 영어로 물어보는 것 같아서, 영어로 대답해 본다. 

  "I bag your pardon, say again please?"

  

  "와이유 컴인 코리아?"

  직원의 말투는 아까 와 비슷하다.


  속헹은 생각했다.

  '아 억양을 보니 이건 분명 한국말인가 보다!!'

  "저는 한국에 워킹홀리데이로 왔습니다. 1년 일할 예정입니다. 고용노동부 초청으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완벽하게 외운 대본을 대답한다. 이 순간을 위해서, 비행기에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이후 몇 차례의 짧은 한국발음 영어 질문이 오간 뒤 무사히 법무부 능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밖에 모여보니, 아직 여자동기들만 통과를 못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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