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리날개 Jul 03. 2023

(9) 붉은정강이두크

다시 한번만 날고 싶었다

(이전 이야기)

폭풍우에 휩싸여 비행기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한편, 붉은정강이원숭이두크는 사탕수수밭에 서식지를 잃어 이동하게 된다.  





[A-15 여압상실]


  설상가상으로 우박은 비행기를 세차게 때려 비상구 문쪽을 맞췄다. 두랄루민을 휘게 할 정도의 강력한 우박은, 문짝과 기체에 느슨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생긴 공간 사이로 기내 있는 공기는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자신도 모르게 기절하기 시작하였다. 뒤늦게 산소마스크가 내려왔지만, 이를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도 칵핏은 기내 여압상실을 일찍 알아차렸다. 일찌감치 산소마스크를 썼고, 더치롤과 사투를 하며, 동시에 긴급 강하를 시작하였다. 


[C-6 소녀 원숭이]


  2만 피트. 땅으로부터 6000M 하늘로 올라오면, 산소가 지상의 절반만 존재한다. 부족한 산소에도 불고하고, 사람은 이것을 모르고 숨 쉬는 동작을 반복한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뇌는 급격히 떨어진 산소포화도에 놀라게 되고, 뇌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신체의 모든 기능을 정지시킨다. 기절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과정은 15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졸리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위기 상황에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유령선 아니 유령 비행기가 되는 것은 찰나였다.


  기내에 있는 승객들은 모두가 기절했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꿈 속에서 만났다. 


  수풀이 우거진 정글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있었다. 원숭이는 괴로운 듯 울고 있었으며, 고통을 어찌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해 보였다. 무엇보다 커다란, 원숭이의 덩치가 압도적이었는데, 멀리서 봐도 사람의 열 배 정도는 돼보였다. 

  그때, 원숭이가 안절부절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주변을 뱅뱅 돌며  날 뛰기 시작하자, 땅이 흔들린다. 곧이어 구름이 생성되더니, 원숭이 주변을 감싼다. 곧이어 원숭이의 눈물과 함께 구름에서 비가 내린다. 그때, 원숭이 주변에 작은 날벌래인 줄 알았는데 휘청거리는 비행기가 보인다.


  꿈속에 있는 승객들이었지만, 자신들이 어떤 상황인지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기 보이는 커다란 원숭이가. 자신들이 맞닥뜨린 태풍임을 알았고, 저기 있는 찌그러진 작은 기체가 자신들이 탑승했던 비행기였음을 알아차렸다.  


  원숭이는 계속해서 날뛰기 시작했고, 비행기는 위태로 워 보였다. 승객들 모두 겁먹어서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때, 용기를 내어 한 사람이 원숭이에게 다가갔다. 속헹은 화난 듯한 원숭이에게 진지한 모습으로 다가가며 무슨 일 있냐고, 캄보디아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속헹은 예전에 거미 사냥을 다닐 때 숲 속에서 많은 원숭이들을 마주치곤 했다. 때로는 원숭이들이 근처에 다가와 친밀감을 표시하곤 했는데, 그때 그가 사냥한 타란튤라를 장난감으로 선물하곤 하였다. 거대한 원숭이는 자신의 고향에서 본 듯한 꽤나 익숙한 모습의 원숭이 종이었다.


  그러나, 속헹이 조금씩 다가가자, 원숭이는 경계하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하던, 속헹은 자신의 고향과 익숙한 주변 모습에서 무엇이 생각났는 듯 금방 막대기를 집고, 구멍을 파기 시작 했다. 잠시 후 털이 보송한 거미가 나왔고, 잽싸게 낚아 독이빨을 제거 후 원숭이에게 보여줬다. 


  속헹은 어린아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원숭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원숭아, 슬픈 일 있었니 무슨 일이야? 여기 타란튤라 가져왔어 이거 너 줄게."

  원숭이는 아이처럼 쭈뼛거리더니, 조금씩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속헹이 거미를 건네며, 계속해서 말했다.

  "왜 무슨 일이야, 말해봐."


  원숭이는 마음을 살짝 열었는지, 조심스레 자신의 아래쪽에 있는, 물 웅덩이를 가리켰다.

  속헹은 커다란 원숭이 곁으로 다가갔고, 곧이어 물 웅덩이 속을 바라봤다. 


  주변에 있던 호기심 많던 승객들도 조금씩 다가가 수면 속을 살핀다.





[D-1 농장 ]


  원숭이의 호흡이 조금 가라앉자, 주변의 비구름과 우박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손상이 심했는지 아직 수평 자세를 못 잡고 있다. 항공기는 추락과 활공 중간 정도의 애매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면으로 강하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속헹이 물웅덩이 주변으로 다가 가자 수면에는 또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속에는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놀고 있다. 잠시 후 주변공기가 진동하더니, 나무 하나가 쓰러진다. 나무를 밀어버린 불도저를 보니, 반대쪽으로 이미 넘어진 나무와 망가진 숲이 광활하다. 


  곧이어 키 작은 작물들이 줄지어 있다. 과수에는 붉고 노란 열매들이 영글어 있다. 잘 보이지 않는데, 트랙터 모양의 로봇 기계만 농장을 돌아다니며 관리를 하고 있다. 각각의 기계들은 비료를 주기도 하고, 과수를 재배하기도 한다. 기계뒤에 달린 복합쟁기는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잡초를 뒤집고 있다.


  기계들은 위성으로 원격동작 되는지 농장 곳곳에서 줄 맞춰 일하고 있다.


  불도저를 피해서 도망가는 원숭이 두크가 보인다. 






[D-2 붉은정강이두크 원숭이] 

  아기 원숭이 두크는 누나들로부터 항상 놀림받는다. 엉덩이에 있는 흰 반점 때문이다. 누나들이 잘 놀아 주고, 털을 고를 때는 참 좋은데, 놀릴 때는 참 짓궂다. 팔에 있는 긴 장갑을 가지고 놀리기도 하고, 스타킹 신었다고 놀리기도 한다.


  '진짜 난 왜 이렇게 생겼을까?' 

  두크는 걱정이 많다. 

  최근 들어 서식지에 구름표범이 잘 보이지 않는다. 원숭이들이 도망 다닐 일이 별로 없어서 좋긴 한데, 먹을 것도 별로 없다. 누나 원숭이는 배고프면 장난이 더 심해진다.


  원숭이 두크네 가족은 나무를 넘고 숲을 넘었다. 새로운 서식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서식지는 대부분 농장으로 변했고, 두크의 누이들은 이때 죽었다. 


  속헹은 눈앞에 있는 커다란 원숭이가 트랙터에 깔려 죽은 영혼임을 알았다. 그에게 남은 무리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중 몇 마리가 위험에 처한 상황도 인지할 수 있었다. 이때, 속헹은 인간과 원숭이의 외교관이 되기를 자처했다. 커다란 원숭이에게 조금씩 더욱 다가가 손 내밀었고, 쓰다듬었다. 손가락으로 털을 빗어주며, 호의로 다가갔다.


  원숭이는 조금씩 마음이 풀어졌는지, 수어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전 08화 (8) 태풍이 쫓아오는 기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