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리는 쌀과 사과가 유명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마을에는 가게가 없어서 간단한 물건을 사려도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
갔다 돌아오는 길만 족히 사오십 분이 훌쩍 넘을 때가 많다.
서울을 떠나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은 석달 전 겨울이었다.'
요즘처럼 클릭 한 번으로 해외에 있는 물건을 택배로 사고,
맛집을 가지 않고도, 장을 보러 가지 않아도 집앞까지 배달이 되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계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아주 느리고 불편한 세상 이야기.
늘 보다가 멈추고, 다시 보다가도 또 멈추던 영화가 이제는 눈에 들어온다.
'리틀 포레스트'는 주인공 혜원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시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혜원은 엄마에게 순서를 뺏긴다.
엄마가 먼저 떠난 후 자신도 서울로 왔지만, 취업과 연애 뭐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삶에
다시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그곳에서 자신을 잃고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그곳에서 자신을 찾아간다.
춥고 혹독한 시절이 아니라, 겨울의 계절을 느끼고
밟히기만 하던 새싹이 아니라, 봄을 맞이하고
푹푹 찌는 날씨가 아니라, 여름을 보내며
어느 것 하나 수확할 것 없는 게 아니라, 가을을 마주한다.
그토록 잊고 싶었던 엄마는 늘 생각나고,
그토록 이해가지 않던 엄마의 마음을 알아간다.
'아빠가 영영 떠난 후에도 엄마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너를 이곳에 심고 뿌리 내리게 하고 싶어서였어.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혜원이는 엄마의 바람대로 힘들 때 찾아온 이곳에서
계절을 느끼며, 자신이 피하려고 발버둥치던 생각을 바라본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나는 왜 그렇게 지기 싫었는지,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이다.
자신이 뿌리 내릴 곳을 보고,
기꺼이 씨를 뿌리는 것.
장마와 타들어 가는 햇볕에도 묵묵히 익어가는 것.
때를 기다리는 것.
어쩌면 혜원이 엄마는 혜원이에게 이런 타이밍을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도시의 소음에 묻혀 자신의 목소리를 쉽게 흩어지지 않도록.
예전에는 지루하고 뻔해 보이던 풍경이,
너무도 잔잔하고 별다를 게 없는 하루라서,
지나쳤던 일상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그 소중함을 알아서 일 것이다.
시원한 자전거 바람, 빵냄새, 초록한 나무,
내가 직접 해먹는 식사, 조용하지만 포근한 집.
나의 감각을 깨우는 이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나에게 깨어있고 싶어서 일 것이다.
서로를 죽일 듯 몰아세우는 갈등도,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복수도,
나를 집어삼키는 야망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반전도 없다.
대신,
잔잔하면서도 사무치는 희노애락
진하고 그리운 순간들의 춘하추동
투닥거리며서도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
매일 하루 비슷하지만 다른 일상이 있다.
나는 매일의 계절을 느끼며
나의 씨를 뿌리고 싶다.
그것이 자라고 자라서 무성해지면
나만의 울창하고 시원한 숲이 되겠지.
힘들때마다 나의 숲으로 가서 실컷 쉬다 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