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간을 어떻게 보낼 생각이에요?"
사실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었다. 대답을 하기 싫었던 것은 아닌데, 답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로 내가 무엇을 하면서 그 시간을 보낼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일종의 도피였는지도 모르겠다. 적극적인 회피임에도 불구하고 난 적극적으로 떠나길 원했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쏘아붙이는 말들, 그리고 뒤에서 나를 쥐락펴락하는 듯한 그 모든 행위가 나를 벼랑 끝까지 가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지 박약에다가 끈기없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 숨막힐듯한 지옥같은 곳에서 나는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직장 생활은 다 힘들다, 어딜가나 다 똑같으니 그냥 참는 수 밖에 없다고들 말한다. 우리 아빠 조차 말이다. 하지만 버틸 대로 버텼던 나에겐 더 이상 무언갈 해낼 여력 따윈 없었고, 계속해서 우울감에만 젖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퇴근길 올라탔던 버스가 집 앞에 다다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쏟아졌다. 누구 하나 뭐라한 적이 없는데 펑펑 흘러 내렸다. 혹여나 또 누가 볼까봐 죄를 지은 것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선 바닥으로 눈물 방울을 쏟아냈다. 시뻘거진 목에는 핏대가 서 있었고, 밖으로 터뜨려야만 할 것 같은 목소리를 꾸역꾸역 누르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러고선 숨을 헐떡였다. 짧은 시간 안에 찬 공기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던 나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세상 떠나가듯 울고 말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서는 내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말을 건넬까 말까 고민하던 그녀는 끝내 용기내어 손을 뻗어 내 어깨를 툭툭 쳤지만 나는 그녀를 신경쓸 겨를 조차 없었다.
"괜찮아요."
한마디 겨우 내 뱉고선 또 하염없이 울었다.
*첫 문장 출처: 빈틈의 위로 / 김지용,강다솜,서미란,김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