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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나에게 똥을 준다면

인생을 길들인 어린 드러머- 영화 위플래쉬

  우선, 이 글을 읽을 분들에게 

"인생이 나에게 레몬을 준다면

나는 그 시큼하고 먹기 힘든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라는  유명하고 멋진 말로 글을 시작하지 못함을 사과드린다. 

인생이 그렇게 시원하고 달콤하며 정신이 번쩍 나는 레모네이드를 만들라고 레몬이나 준다는 것을 나는 애당초 믿지 않는다. 만약 레몬을 주었다면 뒤이어 불구덩이 같은 뜨거운 검을 주었거나 아니면 똥을 주었을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은 인생은 고해라고 했다.










  영화 위플래쉬의 두 주인공은 앤드류와 플레쳐다.

앤드류는 드럼에 재능 있다.

최고가 되려는  야심이 있으며 끓는 욕망이 분출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꿈틀대고 있었다.

그런 앤드류를 플레쳐가 찾아내서 자기의 밴드로 데려왔다.


플래쳐는 무지막지한 선생이다.

인신공격은 기본이고 자기 맘대로 학생들을 갈아치우며 소모품처럼 다룬다.

트레이닝은 너무도 혹독하고 가차 없다.

자신의 한계를 깨라고 끝까지 몰아붙였다.

그의 제자 숀은 플래쳐의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성공했지만 

결국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앤드류는 손이 터져서 피가 날 정도로 연습했다.

어렵게 따낸 자신의 파트를 지키기 위해 교통사고가 나서 피가 흘러도 달려갔다.

피투성이가 된 앤드류는 손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무대를 망치고 말았다.

플래쳐는 앤드류를 무대에서 쫓아냈다.

앤드류는 크게 분노해서 플래쳐를 공격하고 그 일로 학교에서 제적당한다.

자살한 학생과 앤드류의 일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원성이 끓고 결국 플래쳐도 해임당하고 만다.


시간이 흘러 앤드류는 우연히 밴드에 특별초대되어 연주하고 있는 플래쳐를 만난다.

플래쳐는 앤드류에게 자신의 밴드의 드러머 자리를 부탁하고 둘은 다시 연주 무대에 섰다.

플래쳐는 앤드류에게 연주하기로 한 "카라반"과 "위플래쉬"가 아닌 다른 곡으로 시작했다.

전혀 연습하지도 않고 준비된 곡이 아니었다.

앤드류는 무대를 망치고 또 쫓겨났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앤드류는 다시 무대로 돌아갔다.

플래쳐가 무슨 곡을 연주할지 시작사인을 주기도 전에 카라반의 연주를 시작했다.












내가 큐를 줄 거야!!



  놀란 현악기와 관악기 연주자들이 어디둥절했다.

앤드류는 말했다.

내가 큐를 줄 거야!!

앤드류의 큐의 사인에 맞춰 다른 연주자들도 연주를 시작했다.

분노한 플래쳐가 마지못해 지휘를 시작했다.

곡의 끝부분에서 앤드류는 변주를 시작했다.

자신의 한계를 깨기 위해 더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두드렸다.

플래쳐가 자신을 훈련시킬 때 악마처럼 외쳐대던 

더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하지만 플래쳐의 외침은 지금 없었다.

계속되는 변주에 플래쳐가 다가왔다.

앤드류는 플래쳐에게 말했다.

내가 큐를 줄 거야!!

속도가 잦아들고 다시 한번 솟구치며 클라이맥스가 끝나고 다 함께 마지막을 연주하며 곡은 끝났다.

만족한 듯 웃음을 머금은 플래쳐의 얼굴은 그의 심정이 어떤 것인 지 잘 모르겠다.












이 영화는 자신의 인생을 길들이는 이야기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스승과 제자의 갈등으로 해석해서 나는 놀랐다.

물론 각자의 경험으로 영화를 해석할 것이다.

누구도 완전히 틀리지 않고 누구도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다.

내게 이영화는 인생을 길들이는 이야기이다.

번번이 만나는 인생의 한계

속절없이 무너지는 그 인생의 벽을 한 번은 뛰어넘는 이야기,

그렇게 한 번 깨고 나면 그것은 넘을 만한 한계였음을 알게 된다.



인생의 운명은 흔한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확언들로 깨지지 않는다.

그 벽을 깨야 운명이 바뀐다.

지구는 똑같은 속도, 똑같은 방향, 똑같은 인력으로 자전한다.

자전하는 지구에서 대기권을 뚫고 무한한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중력을 끊는 힘과 속도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매일 루틴으로 도는 궤도를 이탈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인생을 길들이는 이야기다.

인생은 변화무쌍한 바다와 같다.

어떤 날은 한없이 고요해서 이 고요와 평화가 영원할 것 같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폭풍이 찾아온다.

그것도 아주 순식간에 말이다.

폭풍이 치는 바다 위 작은 배에서 실낱같은 돛에 의지해서 표류할 때

엄청난 파도와 바람을 보며

기다려, 내가 큐를 줄 거야!!!

그럴 수 있게 한계를 넘어 내 인생을 길들이는 이야기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인생이 나에게 똥을 준다면"이라는 제목을 바꾸고 싶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나 나에게 레몬을 주는 것은 아니어서

비록 무엇을 준다고 해도 나는 내 인생을 잘 길들일 거라 생각하기에 바꾸지 않겠다.

무엇보다 먼저 내 인생 길들이기, 한 번은 나의 한계와 마주하기,

그 이후엔 인생이 내게 무엇을 주던 모두 다 레모네이드로 바뀔 수 있게 될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인생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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