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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의 너에게(1)

사춘기 전쟁은 예견된 전쟁





 중2병이라는 말이 있다.

사춘기로 대변되는 이 중2병은 견딜만하게 넘어가 주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다.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는 그 집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매일매일이 전쟁이다. 나도 이 전쟁을 두 번이나 치렀다. 그렇게 격렬하고 목숨을 내놓은 전쟁은 아니었지만 때론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는 날이 많았다. 아파트 사이의 공원길 벤치에 해가 저물도록 앉아서 앞동의 아파트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저 집안에서는 어떤 엄마가 아이와 전쟁을 벌이고 있을까 생각했었다. 이 전쟁은 다들 모른척하지만 예견된 전쟁이다. 아니 전쟁을 향해 앞으로 한 발 한 발 전진했다고 하는 게 맞다. 사춘기는 통과의례이고 누구나 그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사춘기를 하지 않는다고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정도"이다. 많이 눌리면 눌렸을수록 과도하게 튀어 오른다. 그동안 눌렸던 아이는 기회가 왔으니 눌린 만큼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생각 일 터다. 또한 아이가 아무리 튀어 올라도 부모가 눈도 꿈쩍 안 한다면 아이는 더욱더 극단적으로 돌변한다. 사실 우리는 적당히 했어야 했다. 적당히 좀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않았다. 사춘기, 이 전쟁의 사단의 원인 제공자는 우리 어른들, 부모들이다. 우리들, 부모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우리들의 죄를 까발리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내 얘기로 대신하겠다. 나도 두 아이를 낳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결혼할 즈음에 나는 아주 불안한 생명체였다. 갓 태어난 아이와 다를 바 없는 불안하고 형편없는 어른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고 키웠으니 장차 그 아이와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 이야기를 해본다. 내가 당신들을 대신해서 대표로 욕을 좀 먹겠다. 사실은 변명이다.








가벼웠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리.





 아이를 낳은 것은 일종의 선을 넘어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 선을 넘는 것은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는 아이를 낳기 전으로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혼자서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떠 돌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등에 업고 앞가슴에 하나를 안은 채 땅바닥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1년, 5년, 10년의 프로젝트가 아닌 평생의 프로젝트인 것을,

물론 알았다. 알기는 알았다. 모르고 한 일은 아니지만 아는 것과 실전은 늘 다른 법이다.

그 갭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들이 있고 그 갭이 엄청 큰 일들이 있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의 그 갭은 상상했던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멋도 모르고 뛰어든 이곳, 피 땀 눈물이 가득한 곳, 그곳에 그 어떤 사전 교육도 없이 훌쩍 선을 넘어 뛰어들었다. 그리고 27년이 지났다.  나는 늙어가지만 아이들은 자랐다.  건장하고 아름답다. 후회는 없다. 후회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아이 둘을 낳은 것엔 후회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엔 후회와 아픔과 미련이 남아있다. 죄책감도 있다. 안정되고 행복한 아이들로 키웠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시간을 되돌리지는 않을 거다. 되돌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아이들에게 그때의 나를 이해받고 용서를 바랄 뿐이다.








이제 정말  변명을 좀 하자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유전자의 영역 같은 거고 대물림 같은 거다. 모성의 대물림으로 인해 나의 경험과 무의식에 새겨지고 쌓이는 것, 그것의 시작은 나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한테까지 올라가야 하는 문제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떤 아버지인지도 중요한데 그 아버지는 역시나 그를 키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그 유전자의 그물은 펼쳐놓으면 지구 하나를 덮을 만큼이 된다. 물론 나는 재능도 없었지만 나의 dna에는 훌륭한 모성의 유전자도 기대할 수 없었다. 다행한 것은 나의 부모는 평범하지만 측은지심이 있고 가난하지만 온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너무 가난했다. 그때는 다들 가난했다고 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 치명적인 것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너무 가난해서 어린 나는 늘 홀로 방치됐었다. 내가 좀 더 단단한 아이였다면 이문제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단단하고 심지가 강한 아이는 아니어서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예민하고 겁이 많은 아이에게 유년시절의 외로움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게 됐다.  나는 평생을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됐다. 우울감은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에너지가 부족하고 늘 힘이 달렸다. 우울감은 전염이 강한 감정이라 아이들에게 이 우울감이 전달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더 우울했다. 우울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대체로는 다 허사였다. 두 아이를 사랑했다. 내게는 목숨과도 같은 아이들이었다. 어찌 됐던 내 앞에 떨어진 , 내가 불러 낸 이 두 생명체를 키워내야 했다. 오직 내게 속한 두 아이들, 또다시 가슴이 저며온다. 좀 더 잘했어야 했다. 좀 더 기다려야 했다. 좀 더 이해해야 했다. 좀 더 단단하게 버텨야 했다. 좀 더 힘을 내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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