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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해인 Sep 08. 2022

자화상 (自火傷)

타오르기를 멈추지 않는 불꽃

 뭉툭한 콧바람이 코밑에 닥칩니다. 새초롬한 웃음 진 당신은 그다지 곱습니다. 소리 내지 않아도 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기어코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어봅니다. 귓불이 아스라이 붉어집니다. 당신의 손깍지가 뒷등에 턱 달라붙습니다. 당신의 심장이 안녕하고 말을 걸어옵니다. 내 심장이 퍼석하고 구겨집니다. 아니지, 부서진 건 내 목소리였습니다. 하고픈 말이 그토록 많았는데 모든 어절이 겹쳐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번져버렸습니다. 그런 것들이 아름답습니다. 너무 아름다워 쉽사리 부수어지기에 제격입니다.


 행복은 불안을 동반하여 춤을 춥니다. 야윈 꿈속에 움츠려 살던 내가 그 속에 나를 가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림자를 더 큰 그림자로 가리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슬픔은 나를 더한층 무너지게 한다는 핑계로 나는 미리 감치 다양한 갈래의 감정을 우울 안에 욱여넣었습니다.

 홀로 남겨진 밤이 찾아오면 삐져나온 감정들이 내 목을 콱 움켜쥐어 모든 말이 기도 언턱에서 포화를 이뤘습니다. 그것을 내뱉어도, 삼켜내도 속이 쓰린 것은 매 순간 마찬가지였으니 난 그 대사들을 알약과 모조리 삼켜내고는 했습니다. 감정은 나눌수록 좋은 거라지만 나눠서는 안 되는 감정도 분명히 존재하는 거니까. 그 감정을 혼자 견뎌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슬픔을 아픔으로 여기는 이 세상에서 나의 눈물은 감정 표현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 증세였습니다.


 나에게 여러 줄기의 자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부터 나는 자화상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나를 똑바로 마주하는 일이 부끄럽고 창피하여 자꾸 외면하고는 했으니. 나는 일기를 끼적일 때조차 타인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나는 항상 중간이 없었습니다. 크레파스로 도화지를 칠하다가도 그것을 너무 세게 누른 탓에 크레파스가 곧 부러지고는 했습니다. 어떤 부분은 진한 반면 어떤 부분은 아무런 색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내 감정의 밑바탕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의 가슴으로는 잭슨 폴록의 그림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나는 꾸준히 어긋난 행복을 추구했습니다. 타인의 불행에서 안식을 느끼고 그 속에서 깊은숨을 쉬었습니다. 하지만 비교를 통해 얻은 행복은 고스란히 같은 방식으로 돌아와 내 가슴을 거세게 두드렸습니다. 나는 가늘게 깨져오는 마음의 조각을 한 조각씩 주워 담다 그 위에 주저앉아 자주 울었습니다.


“또 안 좋은 생각 했지?”


 당신은 외마디 대사를 뱉어 정적과 내 머릿속 그림자를 걷어냅니다. 나는 당신의 질문을 해체하여 이해합니다. 나는 이번에도. 나쁜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봅니다. 머지않아 불어오는 바람에 당신의 눈빛을 각인합니다. 당신은 곧 오목조목 이야기를 꺼냅니다. 사소한 일을 비롯해 어릴 적 좋아했던 애착 인형과 소다맛 젤리. 그런 걸 나는 듣습니다.

 덧칠한 눈동자엔 그을린 화상 자국이 있어. 굳게 잠가놓은 서랍엔 단정히 개어놓은 마음들이 있어. 무르팍과 손등에 범벅 졌던 눈물은 어느덧 엄지 손가락으로 옮겨갔어. 명왕성은 태양계를 벗어나도 명왕성이고 토성은 고리가 없어도 토성이야. 그런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당신의 동공에서 그런 말을 유추합니다.

 이내 버스가 도착하자 당신은 그곳에 올라탑니다. 나는 당신을 향해 손을 흔듭니다. 그리고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당신을 배웅합니다. 불현듯 한 가지 깨닫습니다. 나의 지난 시간은 훗날 더 찬란하게 타오를 행복을 위한 장작이었다는 사실을. 숯검댕이처럼 잔잔한 마음이 꾸준히 내 안에 머물러 있었음을.


 우리는 누군가의 초상일 때 가장 뜨겁습니다. 그러니 그대도 부디 타오르기를 멈추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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