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놀기만 하면 행복할까?
마흔에 초등 교사직을 내려놓고 파이어족으로 살고 있습니다. 파이어족 관련 글을 쓰다 보면 '파이어족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 의원면직을 한 건 아니었어요. 재테크 책을 읽다 우연히 알게 된 개념이었고,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제 삶이 그들의 철학과 닮아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파이어족에서 파이어(FIRE)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앞 글자를 딴 단어이고, 말 그대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조기에 은퇴한 사람을 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이어족을 '일 안 하고 노는 사람들'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전까지는 성실하게 일하며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저축률을 높여서 투자로 자산을 키우는 데 집중합니다. 그렇게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을 만든 뒤에야 비로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파이어족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세계적인 경영대학원 INSEAD가 2023년 8월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파이어족은 단순히 쉼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는 과정에 매진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창작 활동이나 봉사, 여행, 배움에 몰두하고, 또 다른 이들은 파트타임 일이나 작은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성취감을 유지합니다. 작가나 강연가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일 거예요. 신현정, 신영주 작가의 <파이어족의 재테크>라는 책에서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파이어족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며 이른 은퇴를 하고, 팔자 좋게 노는 것이 아니다. 파이어족이 말하는 은퇴란 ‘경제적 자립을 통해서 억지로 해왔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은퇴 후에는 나의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일,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을 찾아서 진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저 역시 파이어족이 된 후 이 철학을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 저를 가장 가슴 뛰게 하는 건 글쓰기와 온라인 집짓기입니다. 글쓰기는 올해 1월부터 시작했는데, 지금이라도 시작하길 잘했다고 매일 생각합니다. 교직에 있을 때보다 하루가 훨씬 더 밀도 있게 채워지고,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32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느낄 만큼 즐겁습니다.
이렇게 재밌고 가슴 뛰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아보니, 파이어족의 삶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이 자유임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자유, 원하는 곳에서 일할 자유,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는 자유. 이런 자유가 주는 해방감을 맛본 이상, 저는 결코 이 삶의 방식을 놓고 싶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파이어족은 이제 유행 지난 거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파이어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저 역시 그중 한 명입니다. <싱글파이어>라는 유튜브 채널에는 우리나라 파이어족의 경험담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또 하나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파이어족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제 성향과 맞닿아 있다는 걸 느끼기에, 저는 지금도 기꺼이 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직장 일을 그만두면 지루하거나 우울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걱정은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기에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의원면직 후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갑자기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다운 삶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자유라는 가치가 삶에서 얼마나 본질적이고 달콤한 것인지를요. 타인의 필요가 아니라 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루를 채워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요. 그래서 매일이 더 귀하게 느껴지고, 일상에 대한 감사도 커졌습니다.
오히려 교직에 있을 때보다 더 규칙적이고 더 정성 들여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운동, 달리기, 독서, 글쓰기, 여행, 가족과의 시간, 만나고 싶은 사람과의 만남, 배우고 싶은 것 배우기 등 좋아하는 것들로만 하루를 가득 채우며 ‘살아내는 삶’이 아닌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직장에서 얻는 성취와 만족이 충분하다면 지금 삶을 이어가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겁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고,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내일을 걱정하며 잠든다면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탐색해 볼 때일지도 모릅니다. '내 시간의 진짜 주인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다면, 그 자유를 향한 작은 첫걸음을 지금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파이어족 관련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남들도 다 하는 거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그 작은 시도가 저를 지금의 삶으로 이끌어주었으니까요.
다음 글에서는 제가 읽고 큰 도움을 받았던 파이어족 관련 책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그 책들을 통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더라고요. 지금, 여기서부터 천천히 시작될 뿐입니다.
저는 언제나 그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