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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를 재탐색합니다.

by 김연경

내가 근무하는 카페는 오피스 상권에 위치한 카페로, 점심 피크 포함 하루에 4시간을 근무한다. 작가와 바리스타 겸업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원래 목표는 전업 작가로 돌아가는 거였지만, 다시 카페로 핸들을 꺾게 된 경위는 조금 드라마틱하다.


1년 동안 다닌 사내카페를 퇴사하고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책이나 읽자며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읽고 싶은 책이 도서관에 있는지 확인하려던 찰나,


‘어..?’


홈페이지에 접속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한 팝업.

“온갖 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 작가를 꿈꾸고 있었다면 도전해 보세요! 교육부터 취업까지 연계해 드려요.” 강사진을 보니 이력이 어마어마한, 내로라하는 현직 베테랑 방송 작가님들이었다.


다시 방송으로 돌아갈 각오까지 하고 있던 나는 이 과정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오늘이 신청 마지막 날이라니! 이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며 냉큼 지원서를 보냈고, 바로 다음 주부터 수업을 듣게 됐다.


과제를 통해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작가의 감각을 살리는 일은 즐거웠다. ‘봄’을 생각하며 영감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동네의 오래된 간판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다시 작가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음이 실감 났다. 과제 발표 시간엔 강사님과 수강생들의 호응에 묘한 희열까지 느껴졌다.


그래.. 나 아직 죽지 않았숴!


수업시간에는 현직 작가님의 입을 통해 오랜만에 현장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른 수강생들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래 그랬었지..’ 하는 공감의 시간이었다.


위안도 받았다. 작가로서 일하며 겪었던 어려움들이 난 내가 부족하고 능력이 없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분들도 같은 어려움과 고민을 안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내로라하는 작가님들도 나랑 똑같은 어려움을 겪으셨다니.. 왜 나만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했을까 하는 반성과 동시에, 내가 모자란 게 아니었다는 작은 위로와 치유도 받았다.


그렇게 약 한 달의 과정을 마치고, 방송작가 선배이자 강사님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말이 면담이지, 사실은 ‘저 좀 어디 꽂아주세요.ㅠㅠ’ 부탁하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면담을 통해 전업 작가로 돌아가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나였다. 정확히 말하면 ‘서른아홉’이라는 나이. 지금 다시 방송으로 돌아가면 메인작가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메인으로 들어가기엔 내 경력이 애매했다. 방황의 흔적, 즉 경력 사이 공백과 바리스타를 하며 보낸 시간들 때문이다. 기계가 멈추면 재부팅을 하듯, 모두 나에게 필요한 리셋버튼이었지만 방송과 사회의 시선으로는 그저 비어있는 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에 제동이 걸린 건, 내 마음에 꽂힌 작가님의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결국은 자기 꺼 해야 돼.’


작가님의 입을 통해 내가 늘 내뱉던 푸념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작가님도 그렇고 주변 작가 선후배들을 보면 결국 최종 목표는 ‘자기 꺼’를 하는 작가라는 것. 현업의 중심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버티고 견뎌내도, 남들이 말하면 다 아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성공시켜도, 결국 내 마음을 채워주는 건 ‘내 이야기’였다.


뭐야..

알고 있던 거잖아?


그렇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내게 필요했던 건 반성과 개선이 아니라 용기와 실천,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좀 틀렸으면 어때?

내비게이션도 길 잘못 들으면 다른 길을 알려주는 걸.

돌아가는 길이 잘못된 길은 아니잖아.


그래서 나는 결국 내 길을 믿고 핸들을 다시 힘차게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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