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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天仁 아저씨가 왔어요, 天仁 아저씨가!

대부분 일본 시민들은 한국, 한국인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

by 리안천인

코로나 제6파가 지나가고 2022년 10월 키라키라キラキラ반짝반짝 어린이집 가을 운동회가 열렸다. 이번에는 가족 외에도 2 명까지 참석할 수 있다며 히마리陽葵 엄마가 참석할 수 있겠는지 물어본다. 당연히 가겠다고 답했다. 2021년에는 가을 운동회는 열렸지만, 참석 인원 제한으로 가족 2 명만 운동장에 들어갈 수가 있어 天仁네는 어린이집 담장 밖에서 관람했었다.


운동회 날, 운동장에 들어서니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히마리 반 아이들이 보였다. 그때 마침 히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히마리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더니 한 걸음에 달려와 天仁의 손을 잡고 선생님 앞으로 이끌었다. "다카하시 선생님, 天仁 아저씨예요. 天仁 아저씨가 왔어요." 얼굴 한가득 웃음을 띠고 히마리가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며 선생님께 天仁을 소개해 주었다. 선생님도 웃으며 天仁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2021년 운동회 때 히마리는 담장 밖에 서 있는 天仁을 선생님께 소개해 주기도 했다. 3살 아이 답지 않게 히마리는 어린이집 행사에 天仁이 참석하면 늘 이렇게 天仁을 소개하곤 한다. 그래서 키라키라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히마리와 한국인 天仁의 특별한 친분관계를 알고 있다.


히마리가 天仁네에 놀러 오기 시작한 지 세 달쯤 지난 연말에 있었던 일이다. 직원들과 종무 다과회 후 일찍 귀가하다가 집 근처에서 히마리를 만났다.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天仁을 본 히마리가 반가운 마음에 안아달라고 한다. 주변에는 히마리의 친구, 엄마들도 있었다. 순간 주변의 시선들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세 살 히마리가 天仁의 다리를 붙잡고 조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이를 안아 주면서도 天仁과 친한 모습이 히마리에게 혹여나 해가 되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히마리가 天仁네에서 노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 계속 집 안에서만 놀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밖으로 나가면 우리의 관계가 공개되어 버리는데, 히마리와의 친분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었다. 개인보다는 조화를 중요시하고, 집단을 우선시하는 일본인들은 공동체 내에서 특정인들끼리만 친하게 지내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었다. 전에 고탄다五反田에서 살 때 친하게 지냈던 옆집 하라다(原田) 씨와도 그랬다. 굳이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에게는 우리의 친분 관계를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일본인들의 국민성에 대한 선입관이 天仁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히마리와의 관계를 공개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경직된 한일 관계였다. 한일 문제의 직접 당사국인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생각이 수식어처럼 따라다닌다. 몇 년 전부터 한일 관계는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이행을 둘러싼 대립,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본제품 불매 운동이 일본 매스컴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히마리 엄마에게 상의를 했다. 놀이터에도 데리고 나가고 싶은데 생각이 어떤지. 그랬더니 히마리 엄마가 간단명료하게 즉답을 했다. "데리고 나가 놀아 주시면 너무 고맙지요. 히마리가 늘 놀이터에 가고 싶어 하지만, 어린 동생들 때문에 자주 놀아주지 못해서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죄송하지만 시간 되실 때 꼭 부탁드립니다." 주변의 시선에 문제가 없겠느냐고 되물었더니 “왜요? “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주변의 놀이터, 공원에서 놀기 시작했다. 히마리 엄마 마리코 씨는 매우 생각이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던 중 天仁의 생각이 바뀌게 되는 일이 있었다. 히마리와 공원에서 놀고 있다가 어린이집의 같은 반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이의 엄마와도 인사를 하게 되었다.

"함께 사시나 봐요? 히마리는 너무 좋겠다. 함께 살아서."

"아닙니다"라고 부인하면서 天仁이 한국 사람이라는 점과 함께 간단하게 히마리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우와, 히마리 엄마는 너무 좋겠어요. 이렇게 좋은 옆집 분들이 함께 놀아 주시니. 저희는 어르신들이 가까이 살지도 않지만, 자주 만나지도 않아서 아이들과도 그리 친하지 않아요. 표정만 봐도 히마리가 天仁을 얼마나 따르는지 알겠어요. 히마리 엄마가 너무 부러워요."


이런 일은 두어 번 더 있었다. 일본에 오래 살면서도 늘 폐쇄적인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을 싫어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익 정치가들과 달리 젊은 일본 엄마들의 한국, 한국인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직접 느끼게 되었다. 최근 한국의 국력 신장, BTS를 비롯한 K팝의 인기와 더불어 기생충, 사랑의 불시착 등 영상 콘텐츠로 시작된 4차 한류붐 덕인가도 싶었다.


天仁의 일본인 친구, 거래처 분들은 대부분 한국, 한국인을 배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동네의 일반 시민들도 대부분 그렇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주민들, 동네의 히마리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히마리와 天仁네 관계가 자연스럽게 오픈되었고, 행동도 자유스러워졌다. 히마리는 당연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히마리 엄마도 天仁을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이렇게 순수하고 예쁜 히마리와의 인연에 불편한 한일 관계가 무슨 걸림돌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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