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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Oct 15. 2023

저 한국어 공부하고 있어요

다카오산 정상으로 찾아온 뇌졸중-5

일반병실로 옮겼다. 4인실의 각 베드마다  커튼이 쳐져 있는데 天仁 침대가 제자리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옆침대에 계신 분이 커튼을 살짝 걷으며 말을 걸어온다.


"외국인인데 어떻게 일본말을 그렇게 잘해요?"
아마 침대를 옮겨 오고, 주치의가 오시고, 간호사와 이야기할 때 이름을 듣고 외국인인 줄 아셨던 모양이다. 60대 중반쯤 되신 것 같다. 좀 무례하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도쿄 시내에서 50Km 정도 떨어진 곳이니 외국인, 한국 사람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이해도 된다.


"저는 한국 사람인데. 혹시 한국말하실 줄 아세요?"
"아니요. 모릅니다"
"그렇지요? 저는 여기 일본에서 일하고, 살고 있는 사람인데, 제가 한국말을 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겠지요? 그러면, 서로 소통도 되지 않으니 일도 되지 않을 것이고 많은 일본 분들이 얼마나 불편하시겠어요? 제가 일본말로 해야 소통이 되지요. 저는 일본말을 그리 잘하지도 못합니다만, TV 보시면  일본말 잘하는 서양인들도 많지 않습니까? 그 나라에서 살려면 그 나라 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도 당연히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

"그건 그렇네. 하하"

"참고로, 일본에서 일하며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약 3백만 명쯤 되고,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일본 사람도 1백만 명이 넘어요. 저는 국적만 한국인 외국인이지 일본인들과 똑같이 세금과 연금, 의료보험료를 다 내고 있답니다."
"그렇군요. 저는 외국인을 처음 만나 봅니다. 하하."

이런 면에서 보면 일본은 글로벌화에 뒤지는 매우 폐쇄적인 섬나라다.  


다음 날에는 집중 치료실에서 天仁을 성심껏 간호해 주던 20대 초반의  간호사 아가씨 가쿠다 씨가 찾아왔다.
"좀 어떠세요? 새 병실에 좀 적응이 되셨나요? 사실은 저 한국어 공부하고 있고,  10월에 한국에 놀러 갑니다."
"그래요? 어디로요? 서울?"
"아니요. 이번에는 부산에 갑니다. 혼자서요.”

"그래요? 난 집이 서울이고, 서울에 살고 있다가 왔지만, 사실 고향이 부산입니다. 서울에는 가봤어요?"

"네, 서울에는 2번 다녀왔어요. 친구들과 함께요. 인사동, 명동, 남대문 시장에도 가 봤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부산에 한 번 다녀오려고요"

"한국말은 할 줄 알아요?"
"네. 식당 가서 음식을 주문할 정도는 됩니다. 天仁님 이름 한국어로 읽을 수 있습니다."

몇 마디 시켜보니 간단한 우리말을 곧잘 하고, 받침 있는 글자도 다 읽어낸다. 혼자 한국을 여행해도 전혀 문제가 없겠다. 히라가나 표기에 맞추어 발음하는 일본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한국어 중의 하나가 받침 발음이다. 그래서 김치가 '기무치'가 되고, '김상'도 '기무상'이 되며, 맥도널드는 '마쿠도나루도'가 되는데, 가쿠다 씨는 한국어 공부의 맥은 잘 짚고 있는 듯하다.

"부산에 가면, 어디에 가 볼 거예요?"

"네, 전포동 카페거리와 해운대에는 꼭 가 볼 생각입니다."
"전포동 카페 거리? 난 처음 듣는데. 새로 개발된 곳인 모양이네요. 나도 일본에 나온 지가 벌써 7년이 지났으니 하하. 그런데, 어떤 요리 좋아해요? 본래 부산은 바닷가라 신선한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고,  아가씨들 입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복국, 돼지국밥, 밀면도 유명한데요."

'네, 돼지국밥이 부산의 유명한 요리라는 말 들어봤어요. 저는 사실, 해산물요리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 이번에 부산에 가면 간장게장을 꼭 먹어보고 싶어요. 전에 서울에서 한 번 먹어 본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혹시 맛있는 집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나도 부산의 간장게장 맛집은 잘 모르겠는데, 알아보지요. 가족, 친구들이 있으니 맛난 집 소개해 줄 거예요."

그래서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수소문하여 해운대 고개에 있는 좋은 집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홈피에 들어가 보니 일본 물가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 물론, 간장게장이 비싼 음식임은 알고 있다.


그러던, 중에 마침 자형이 전화를 하셨다. 간단히 상황을 설명드리고 맛집을 여쭈어 보았더니, 마침 해운대 바닷가에 자주 가시는 간장게장집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처남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간호해 주신 분이라면  누님과 함께 식사를 대접하시고 싶다고 한다. 가쿠다 상이 초면에 혹시 불편해하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는데, 누님도 나오신다고 하니, 가쿠다 씨도 염치없지만 신세를 지겠다고 한다. 자형 덕분에 가쿠다 씨는 가 보고 싶은 해운대와 먹고 싶은 간장게장,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하게 되었다. 젊은 아가씨가 외국에서 혼자 밥 먹기도 어색할 텐데 너무 잘 되었다. 자형께는 정말 고맙다.


다음 날 재활치료실에 갔더니, 30대 초반의 물리 치료사 스가와라(菅原)씨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물리치료사회와 교류가 있어 얼마 전에는 분당 서울대 병원에 견학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간호사 한분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데, 잠깐 들어보니 꽤 잘하는 한국어 수준이다. 곧 다가올 ‘추석‘도 깜짝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발음한다. 도쿄 외곽에 있기는 하지만, 455개 병상의  국립 종합병원인데 한국 사람이 입원하니 아마 병원에서 화제가 된 모양이다. 드라마, K-POP 등 한국 콘텐츠의 인기, 신오오쿠보 코리아 타운의 한류 붐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한류 붐의 대단함을 실감한다. 특히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 한국 문화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직접 느끼며 깜짝 놀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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