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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Nov 04. 2023

병실에서 맞은 히고(肥後)님의 90세 생일 축하연

다카오산 정상으로 찾아온 뇌졸중 - 10

고탄다 재활병원의 옆 병실에 입원 중인 '히고신지(肥後信治)' 님의 90회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부인과 따님이 함께하는 자리에 아내와 함께 초대받았다. 따님이 케이크를 준비해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도 병원으로 모시고 왔다. 天仁의 아내는 야채를 듬뿍 넣은 계란말이를 만들어와 모두를 즐겁게 했다. 90세 생일 소츠쥬(卒寿)는 장수국가 일본에서도 대단한 장수 축하연이지만 입원 중이시니 조촐해도 어쩔 수가 없다. 


일본에서는 환갑(還暦, 60 세), 희수(喜寿, 77 세), 산쥬(傘寿, 80 세), 미쥬(米寿, 88 세) 등의 건강 장수를 기원하는 축하연을 연다. 100번째 생일은 百寿라고 적고, ももじゅ(모모쥬)라고 읽는다. 이때 '모모'에는 '많다'는 뜻과 '백'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재미난 것은 99세를 '白寿(はくじゅ, 하쿠쥬)'라고 하는데 일백백 '百자에서 '一' 확을 빼서 '白'으로 적는 것이다. 90세 생일에 '졸(卒)' 자를 쓰는 것은 졸(卒) 자의 초서체를 풀면 구십(九十)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히고' 씨는 고탄다 재활병원에 입원했던 날 식사를 하는 5층 병동 데이룸에서 처음 만났다. 인연이었던지 옆 방에 입원해 계신다고 하며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서먹했던 병원에 빨리 적응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건강하셔서 70대 중반 정도로 보였지만, 곧 90세가 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친해졌던 것은 天仁이 노트북에서 웹을 사용할 수 있도록 렌털 와이파이 루터를 설치해 드리면서였다. 개인적으로 와이파이를 주문해서 택배로 루터가 도착했는데, 병원의 젊은 간호사들도 설치 방법을 모른다고 했던 모양이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츠에 근무하다가 작년에 정년 퇴직했다는 따님이 "天仁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라고 해서 天仁에게 부탁하게 되었다고 한다.


'히고' 씨는 1990년대 일본의 은행 통폐합으로 지금은 미즈호은행이 된 일본 최초의 시중은행 다이이치강교(第一勧業銀行) 출신이시라고 한다. 매우 오픈 마인드인 '히고' 씨는 한국인, 외국인에 대해 편견이 없는 분이다. 일본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스피커로 초대하여 영어로 소통하는 볼런티어 모임 IES(International Exchange Society)의 30여 명 회원과도 활발하게 교류 중이시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외졸중 극복하기 일본어로 번역, 이메일로 송부 중


지역 의료시설의 잡지에 에세이도 20여 회 기고했다고 하시며 최근에 '히고' 씨의 글이 게재된 잡지를 한 권 주신다. "나의 장수 축하연"이라는 글이었는데, 글을 읽어 본 소감을 이메일로 보내 드렸다. 수시로 글을 적으신다고 하신다고 하기에 핸드폰으로 天仁의 브런치를 보여드렸더니 읽어 싶다고 하신다. 뇌훈련, 손가락 재활훈련을 겸해서 틈틈이 '뇌졸중 극복하기' 매거진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워드파일로 보내드리고 있다. "모국어가 아닌데도 외국인이 적은 일본어 인지 모를 정도로 너무 잘 적은 글"이라고 칭찬을 해 주셔서 부끄럽다. 어제 따님을 만났더니 따님도 아버지가 보내주셔서 읽어보고 있는데, "병중에 투병일기를 적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며, 아버지께 따뜻하게 대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건강식품도 드시는 것이 없으시다는데 너무너무 건강하신, '히고' 씨.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지론이다. 天仁에게도 90세가 있다면 '히고' 씨처럼 건강할 수 있을까? 뇌경색 이후 건강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오늘 선생님 생일이에요. 축하한다고 뽀뽀 한 번 해 드리세요" 아쉽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는 남편을 '의사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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