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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다유 Oct 09. 2024

현장을 상상하게 하라

2장 나는 50대 N잡러-현장영상해설사 1

낭독봉사를 하기 위해 복지관을 찾았다. 1층 로비를 지나 3층 녹음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검은색 안경을 쓰고 흰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사람은 시각장애인이었다. 나는 가만히 숨죽이며 계단 옆으로 비껴서 기다렸다. 


"안녕하세요~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흠칫 놀랐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내가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나는 아는 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민망한 마음에 서둘러 "아,, 안녕하세요~저는 낭독봉사자입니다" 하고 얼버무렸다


"네,, 이렇게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디오북 잘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지팡이를 툭툭 치며 계단을 내려갔다


나중에 시각장애인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내가 한 행동이 무례했다는 것을 알았다. 정안인이 생각하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전부 전맹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전맹의 비율은 10%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완전 실명보다는 일부 형태나 색깔 구분이 가능한 저시력 장애인이 훨씬 많으며 전맹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숨소리, 움직임 등으로 계단옆에 눈치 보며 서 있는 나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에 또 그를 만나면 나는 먼저 인사를 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낭독봉사자 유 00입니다,,"

"아,, 지난번에 만났던 분이군요,,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자연스럽게 시각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들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사고로 병으로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시력을 상실한 그들에게 세상은 어둠,, 그 자체일까?


그로부터 얼마 후 시각장애인에 대한 나의 관심 레이다가 공문으로 날아온 서류 속 글귀에 꽂혔다. 내용엔 시각장애인을 위한 현장영상해설사 교육생을 모집하니 다른 장애인 단체에도 널리 알려달라는 요지였다. 그때 나는 일주일에 두 번 한국DPI(한국장애인연맹)에서 오래전 인연으로 알게 된 단체 회장님의 요청으로 잠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하필 내가 출근한 날 이런 공문을 받다니,, 이것은 운명인가,,


하지만 운명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었다

현장영상해설사 교육생으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서류심사와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1차 서류심사는 다행히 잘 통과가 되었는데 문제는 면접시험이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이다 보니 관련 정보가 전무했다. 장애인단체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고개만 갸우뚱할 뿐 잘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면접에서 가장 많이 기본으로 물어볼 것 같은 자기소개, 지원동기, 앞으로 포부 등 나름의 준비를 진행했다



"지금 방 안의 풍경을 시각장애인에게 설명해 보세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면접관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을 소개하면서 이 분에게 방 안의 풍경을 설명해 보라고 했다. 자기소개만 열심히 준비했던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순간이었다


"아,,, 그러니깐,, 지금 앞에 사무용 탁자가 놓여있고 그 뒤에는 커피와 물을 끓일 수 있는 커피포트와 머그잔이 있습니다,, 또,,,"


이게 뭐람,, 지금 뭔 휑설수설,, 난 눈알을 굴리며 열심히 책상이며 의자며 집기들의 크기와 위치와 색깔을 두서없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그렇게 설명하시면 앞에 계신 분이 헷갈려하실 거예요,, 먼저 방향부터 설정해 보세요,,"

면접관은 이런 사람이 처음은 아니라는 듯 살며시 웃으며 추가 설명을 해보라고 한다

어찌어찌 시계방향 어쩌고 오른쪽에서 왼쪽 하면서 앞이 보이지도 않은 사람 앞에서 손가락을 위아래로 가리키기까지 했으니 이 면접 어쩌란 말인가,,



며칠 후 면접결과가 문자로 왔다

합격이었다

그 후 내가 합격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중에 면접관의 정체가 선배 현장영상해설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좀 친해져 살며시 물어보았더니


"표현은 서툴지만 따뜻하고 잘 들리는 목소리가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네요"


그녀는 함께 면접에 참여했던 시각장애인의 얘기를 전달하면서 허둥대며 정신없이 말했던 당시의 나를 흉내 내며 우리는 한동안 크게 웃었다


이렇게 낭독으로 N잡러-두 번째 현장영상해설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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