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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4장 새벽낭독의 책들-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난다유

책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시작한 독서모임이 새벽낭독입니다. 겨울의 새벽낭독은 쉽지 않습니다. 주위가 너무도 적막해 나 홀로 깨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곧 줌 화면으로 보이는 새낭 님들의 모습이 하나 둘 켜지면서 주위가 밝아집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새벽낭독으로 시작합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중편의 소설입니다. 매일 한 달 동안 낭독하기엔 분량이 적습니다. 벌써 후반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깐요. 하지만 우리는 오래 이 소설을 붙들고 싶습니다. 주인공 펄롱이 느끼는 감정선에 맞춰 함께 마음이 이동되고 출렁입니다.


어느새 영화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다룬 영화는 소설에서 감동을 많이 받은 독자라면 영화로 보이는 화면은 실망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되었는 데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주인공 펄롱을 연기한 배우 킬리언 머피의 눈빛입니다.


영화는 소설 속에서 상상했던 아일랜드 속 눅진한 안개에 싸인 오래된 석조건물의 모습을 무심하게 보여줍니다. 그 속에 매일 석탄을 옮겨 실어 나르는 펄롱의 모습과 평화로운 일상의 가족들, 그리고 멀리 성당 종소리가 울리면서 오래된 수녀원의 건물이 회색빛 안갯속에서 서서히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조금 전까지는 여기를 뜨고만 싶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여기에서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새벽, 펄롱은 석탄배달을 위해 수녀원을 방문합니다. 아무 인기척 없는 수녀원 앞마당을 지나 창고문을 열자 어두운 한쪽 구석에 한 소녀를 발견합니다. 온몸을 떨며 추운 창고에 갇혀 있었던 소녀의 모습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펄롱은 자신의 옷을 벗어 소녀의 어깨에 걸쳐 주며 수녀원 문을 두드립니다. 문이 열리자 소녀와 함께 온 펄롱의 모습에 수녀들은 놀람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댑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펄롱은 자신이 계속 의문을 가졌던 일이 조금씩 매듭이 풀리는 순간을 느끼게 됩니다. 수녀원장은 펄롱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발설하지 말라는 뜻의 압박을 가하고 그런 수녀원장의 모습에서 펄롱은 좀 전에는 벗어나고 싶었는데 여기에서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반대로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오늘의 한 문장으로 펄롱의 내적 변화의 마음을 잘 표현한 문장으로 선택했습니다. 우리에게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온 마을이 수녀원과 연계된 일을 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 또한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들은 침묵합니다. 하지만 펄롱은 버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서 수녀들 눈치를 보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갑니다.


"내 이름은 빌 펄롱이고 저기 부두 근처 석탄 야적장에서 일해. 무슨 일 있으면, 거기로 찾아오거나 아니면 나를 불러"




펄롱은 용기 있는 행동을 시작합니다. 그는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미혼모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할 수 있었을 때 그들 모자를 살린 것은 미시즈 윌슨의 따듯한 손길이었습니다.


자신이 받았던 그 보살핌의 흔적은 자신이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사랑의 바탕이었다는 것을, 펄롱은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Coa87KkpTrY?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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