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찾아온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독거노인. 사건 현장도 외진 빌라촌이었다. CCTV 증거는 없었고 현장에선 피고인의 지문과 머리카락이 발견됐다. 피고인은 전혀 사건 기억이 없다며 억울해했다. 그도 사건 당일 수면제를 먹고 곯아떨어졌다고 주장했다. 라미처럼.
하지만 수사기관은 사건 당일 새벽 집 밖에서 피고인을 봤다는 이웃 주민의 증언을 확보했다. 사건 발생 장소가 달랐지만, 흐름은 두 모녀 살인사건과 일치했다.
갑수는 왠지 비슷한 사건이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 기자 시절 이후 몇 년 만에 의욕이 샘솟았다. 우선 최근 몇 달간 보도된 살인사건들을 쭉 정리하기로 했다. 선고가 난 사건은 법원에 판결문을 요청했고, 진행 중인 사건은 직접 공판에 참석하거나 담당 변호사를 취재했다.
그러자 비슷한 사건들이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했다. 재판 피고인이 불면증을 호소하면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 경우가 몇 건 있었다. 각 피고인들은 피해자의 주거지와 멀지 않은 곳에 살았지만 면식범은 아니었다. 그리고 발견된 증거 종류가 동일했다. 피고인의 지문과 체모.
그런데 대부분 발생 당일 사건 속보성 기사에서 끝났고, 후속보도 된 경우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별 특징이 없는 사건들이었다. 피해자는 모두 혼자 사는 취약계층이었다. 누군가 목숨을 잃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슈가 되려면 특별한 ‘스토리’가 필요했다. ‘반지하 집에서 괴한에게 동시에 죽임을 당한 두 모녀’처럼.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로웠다. 불면증이 살인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걸까? 한때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살인사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불면증 환자가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는 정신과 전공의에게 물어봤다가 비웃음만 샀다.
취재는 더 진전되진 않았다. 이 정도 추측으로는 기사를 만들긴 어려웠다. 공연히 공포만 조장했다며 문제만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하자니 여태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후배들을 부리고 아무 성과도 내놓지 않아 회사에 멋쩍기도 했다. 일단 부장에게 정리된 내용을 보고만 하기로 했는데, 부장의 반응이 의외다.
“그냥 쓰자. 뭐 어때? 원래 기사는 사실만 제시하면 돼. 해석은 각자의 자유고.”
내심 반가운 말이었지만 막상 기사를 쓰자니 막막했다. 이걸 편성하기로 한 데스크들도 제정신인가 싶었다. 분명 ‘차라리 소설을 써라 이 기레기야’라는 댓글이 달릴 것이다.
하지만 갑수는 기사를 내고픈 마음이 컸다. 오래간만에 열과 성을 들인 취재였다. 갑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이켠 뒤 일필휘지로 기사를 써 내려갔다. 갑수는 마이크를 들고 스탠드업까지 촬영했다.
“피고인들은 모두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런데 취재 결과 대부분 불면증을 호소하면서 약을 복용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걱정했던 것보다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원래 새로운 사건 내용이 나오면 다른 언론사가 추종보도를 하는데, 어째 잠잠했다. 갑수는 적잖이 실망했다. ‘내가 쓰는 기사가 그러면 그렇지’라며 자괴감에 빠졌다. 집에 돌아가 위스키 스트레이트를 빈속에 들이붓고 잠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유명 방송국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미스터리 클럽’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