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살인자 2화
*이야기에 나오는 이름과 단체, 사건 등은 모두 창작의 산물입니다.
갑수는 현장을 둘러봤다. 두 모녀의 집은 허름한 빌라 반지하다. 건물에든 주변에든 CCTV는 없었다. 골목도 워낙 좁아 차를 대긴 불가능했다. 당시 상황이 블랙박스에 찍혔을 가능성도 없다는 얘기다. 보통 이렇게 영상이 부족한 사건은 주목받지 못하고 끝난다.
그런데 사건 이름에 ‘모녀’가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반지하에 사는 소외계층이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언론이 선호하는 요소가 듬뿍 포함돼 있다. 언론사들은 너도나도 기사를 쏟아냈다. 대세에 휩쓸려 무지성으로 달려가다 절벽에 떨어져 죽는 ‘레밍 쥐’ 마냥.
주변 이웃을 취재해보니 두 모녀는 특별히 누군가에게 원한 살 사람들은 아니었다. 엄마는 근처 재래시장에서 나물을 팔며 하루 벌어 하루 살아온 모양이었다. 한편 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이웃들 대부분은 엄마가 혼자 살았다고 증언했다. 아마 비교적 최근 집을 합쳤거나, 딸이 잠깐 방문한 새 참변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유족은 딱히 없는 것 같았다. 두 모녀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마련됐지만 조문객은 대부분 동네 이웃이거나 일반 시민들이었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몰려들어 ‘자신들을 뽑아주면 여성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라며 떠들어댔다. 얼치기 기회주의자들이다. 정작 숨진 딸의 아버지나 친척 같아 보이는 인물은 찾아오지 않았다.
며칠간 모든 뉴스, 인터넷 포털, SNS가 두 모녀 사건으로 도배됐다. 세간의 분노가 들끓었다. 언론은 경찰에 범인을 잡았냐, 도대체 언제 잡을 거냐며 독촉했다. 규홍은 기자들의 전화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규홍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 대응으로 일관했다.
진척 사항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과 지문이 나왔다.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DNA 분석 결과가 규홍 손에 있었다.
규홍이 경찰로서 직접 담당한 사건 가운데 이렇게 주목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규홍은 어쩌면 이 사건이 경력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규홍은 자신이 스포트라이트 받을 방법을 고민했다. 우선 용의자를 어떻게 특정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언론에 흘릴 지가 문제였다.
그런데 현장에서 발견된 DNA 샘플의 주인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결과가 신빙성이 있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언론과 여론의 기대에 부흥할 만한 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규홍은 잔꾀를 내기로 했다.
이튿날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건물 로비. 흐리멍덩한 표정의 라미가 칼주름 정장 차림새의 금융맨들을 헤집고 나간다. 이날도 잠을 설쳐 매우 피곤했지만 할 일이 태산이었다. 근처 카페에서 대충 샐러드로 점심을 때울 요량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여의도에 어울리지 않는 갈색 바람막이 차림의 사내들이 로비에 나타났다. 푸석푸석한 얼굴의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라미에게 다가온다. 규홍이다. 그는 라미에게 종이 쪼가리를 꺼내 보인다.
“김라미씨죠? ‘도봉 두 모녀 사건’ 관련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이 광경을 목격한 금융맨들은 너도나도 증권가 정보지, 지라시를 만들어 돌렸다.
"받은 글)노원 두 모녀 살인사건 용의자는 ○○증권 직원? 회사 로비에서 경찰에 긴급체포!"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