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클럽은 미궁에 빠진 사건을 영상으로 구성하고, 전문가가 출연해 훈수를 두는 프로그램이다. 그 방송국에선 몇 년 전쯤 졸피뎀 부작용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영한 적이 있다. 제작진은 갑수의 기사를 졸피뎀 부작용에 초점을 맞춰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묻힐 기사, 지상파에서 다뤄주면 영광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언급한 다큐멘터리는 갑수도 본 적이 있었다. 불면증 환자들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집 안을 돌아다니고, 심지어 밖에 나갔다 오는 영상이 꽤 충격적이었다. 제작진이 사건에 부작용을 어떻게 엮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작가는 담당 취재기자 자격으로 갑수에게 인터뷰도 제안했다. 다른 방송국에 출연하는 건 갑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부장에게 물었더니, 부장은 신나서 곧바로 본부장 허락을 얻어냈다. 매번 남 인터뷰만 하다가 방송에 나가 자신의 소견을 말하려니 갑수는 기분이 묘했다.
이슈가 뜨거운 만큼 제작진은 서둘러 방송을 제작해 방영했다. 본인 리포트도 생방송으로 안 보는 갑수였지만, 이날만큼은 일찌감치 집에 들어와 캔맥주를 따놓고 본방 사수했다. 그런데 방송 제목을 보자 입이 떡 벌어졌다.
‘졸피뎀, 무의식의 살인자?’
프로그램은 사건의 피고인들이 모두 졸피뎀을 오랫동안 복용했다는 점을 집중 조명했다. 그리고 졸피뎀 부작용으로 몽유병 유사한 증상을 겪는 일부 환자들의 자료영상을 활용했다. 그리곤 환자들이 이 부작용을 겪는 가운데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분석했다. 물론 출연한 전문가들은 "그럴 확률은 극히 낮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방송 내용만 놓고 보면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제목의 파급력이 너무 컸다. 이미 온라인에선 ‘두 모녀 살인사건은 졸피뎀 부작용 때문’이라며 단언하는 내용의 가짜뉴스가 퍼졌다. 소위 '탈진실'의 현장이었다. 뒤이어 인터넷매체들이 그들의 주특기인 방송 베끼기, 즉 우라까이 기사를 쏟아냈다. 순식간에 포털 뉴스 사회면은 미스터리 클럽 기사로 도배됐다. 라미를 포함한 사건의 피고인들은 졸지에 좀비가 돼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일단 사건의 피의자들이 그런 정도의 부작용을 겪었는지부터 확인되지 않는다. 시청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은 제목부터 심사숙고해서 뽑아야 한다. 갑수가 이렇게 보도했다면 아마 언론중재위원회에 불려 갔을 것이다. 부장도 방송을 보고 있었는지 부서 단체 카톡방에 메시지를 올린다. “역시 PD들은 글러먹었어...”
잠시 후 갑수의 전화기가 울려댔다. 규홍이었다. 이 야심한 밤에 연락을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다. 짐작 가는 바가 없진 않았다.
“아니 도대체 기사를 어떻게 썼길래 이래요? 지금 다른 기자들이 이게 사실이냐면서 난리가 났어요... 참나.”
갑수가 만든 방송은 아니었지만 단초는 그가 제공한 게 맞기 때문에 변명이 궁색했다. 언론사들은 다시 레밍 쥐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확인되지 않은 괴담이든 아니든 이젠 상관없는 판이었다. 기사만 썼다 하면 조회수가 폭발했으니까.
언론은 이슈를 확대하고, 네티즌들은 새로운 괴담을 만들어냈다. 과거 졸피뎀 오남용으로 물의를 빚었던 연예인들을 다시 끌어냈다. ‘○○도 졸피뎀 먹었던 거 같은데, 설마?’ 이런 식이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닐 수 없었다. 표적이 된 연예인들은 각자 SNS에 억울함을 토로하느라 진땀을 뺐고, 언론은 그걸 받아쳐 기사로 내보냈다. 탈진실의 악순환이었다.
대한민국이 졸피뎀 공포에 휩싸였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대중은 이미 광기에 휩싸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졸피뎀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는 식의 보도자료를 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네티즌들은 식약처가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며 식약처장 경질까지 주장했다. 그러자 식약처는 대국민 사과를 하는 한편 졸피뎀 부작용 검증에 착수하겠다며 무릎을 꿇었다.
경찰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서울경찰청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규홍에게 팀장을 맡겼다. 갑수의 기사에 거론된 사건들을 포함해 그 밖의 유사 사건을 발굴하기로 했다. 이런 경찰의 대처는 이례적이다. 이미 재판까지 간 사건을 뒤지는 건, 그 전제가 된 수사단계가 미진했음을 자인하는 꼴이니까. 하지만 그만큼 여론이 거셌다. 참으로 요지경 세상이다.
뜻밖에 갑수는 일약 특종기자가 돼 있었다. 네티즌들은 갑수의 취재력과 통찰력을 찬양했다. 그러자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빗발쳤다. 앞으로 무슨 취재를 할 거냐며 궁금해하는 축들도 있었고, 기사 내용을 은근히 깎아내리며 시샘하는 이도 있었다. 이게 바로 명예의 맛인가? 갑수는 내심 뿌듯했다.
소소한 문제가 하나 있다면 부장이었다. 기왕에 우리가 불을 지폈으니 앞으로도 이슈를 주도해야 한다며 난리였다. 후배들을 여럿 붙여 특별취재팀까지 만들었다. 하나 다행스러운 건 경찰이 적극 협조에 나섰단 점이다. 규홍이 새로운 유사 사건을 슬쩍 알려주면 갑수가 단독 보도하는 식이었다. 최초보도한 기자의 공을 높이 산 건지, 아니면 다른 셈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규홍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갑수에게 수사 상황을 흘려주는 척하며 실제론 자신이 이슈의 주도권을 쥐려 한 것이다. 규홍은 승진에 목말라 있었다. 언제까지 강력계장 자리에만 만족하고 있을 순 없었다. 높으신 분들 술자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비위도 맞춰가며 처세를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경찰 본분에 걸맞은 성과가 필요했다.
그 와중에 ‘좀비사건’이 터졌다. 좀비사건은 규홍이 붙인 별칭이다. 사건은 더 자극적으로 흘러가야만 했다. 그리고 멋지게 해결하는 거다. 그러면 경무관으로 승진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언젠가 서울청장이 되는 것도 허튼 꿈은 아닐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