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트라우마와 미세한 극복
살 만하니 또 글을 놓는다.
육아와 집안일, 내 마음을 돌보는 일까지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글 쓸 여유가 금세 사라진다. 어느새 아기는 11개월이 되었고, 예전보다 조금은 혼자서도 잘 논다. 내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아기와 보내는 순간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고 가끔은 즐거워지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줄었다는 것이다.
아기의 언어노출을 위해 억지로라도 맘모임에 갔다. 하지만 다녀올 때마다 집에서 눈물바다가 되곤 했다. 사람들 사이에 서면 온몸이 얼어붙고, 잘해보려 애쓰다 보면 누군가는 나를 만만하게 대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말투를 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사회에 속할 수 있을까?'
'진짜 나로서 누군가와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거의 상처들은 나를 11살 아이로 데려갔고, ‘나는 원래 무시당하는 사람’이라는 자기비하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지치고, 버티기 힘들어 결국 전화 심리상담을 결제했다.
8회기 동안 가족 이야기, 트라우마, 관계에서의 패턴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때의 무기력한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두렵고 불안하고 무기력해지는 순간은 여전히 찾아오지만, 나는 그때처럼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두려워도 움직였고, 불안해도 내 삶을 꾸역꾸역 살아냈다.
그건 분명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기의 언어노출보다 더 중요한 건 엄마인 나의 정서적 안정이라는 것을.
엄마가 행복하게 사람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떤 교육보다 아이의 사회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과감히 거리를 둬야 할 관계들과 멀어졌다.
그리고 내 안의 진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다.
그랬더니, 삶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육아가 조금 더 즐거워졌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 변화가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다시 이렇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