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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운 유희, 육아라는 게임

초보 엄마로 버티고 웃으며 성장한 시간

by 홍페페

아기를 낳고 단 3일 만에 퇴원했다.
조리원도, 산후도우미도 없었다. 준비한다고 했지만 집은 아기를 키우기엔 어설펐다. 일단 토퍼 위에 겉싸개를 깔아 아기를 눕혔다. 한겨울이라 보일러를 틀어도 집 안 곳곳에 냉기가 서려 있었고, 기저귀갈이대에 올리는 것조차 불안했다.

남편이 휴가를 내 산후조리를 도왔다. 요리를 거의 하지 않던 사람이 미역국을 끓여 주고, 생애 첫 파스타도 만들어줬다. 우리는 서툴지만 최선을 다하는 초보 부모였다.

낮밤이 바뀐 육아의 초반은 그야말로 생존이었다.
아기를 씻기면서 나는 세수조차 하지 못했고, 수면 패턴에 맞춰 쪽잠을 자다 보니 ‘나’라는 존재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기가 미소 짓는 순간, 그 작은 손짓 하나에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70일 무렵, 수면교육을 시작했다. 울음을 참으며 쪽쪽이를 끊고, 밤중 수유를 줄였다. 일주일 만에 아기는 밤 열 시간 이상 통잠을 자고 분리수면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다시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잘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혼자 자는 걸 힘들어하는 내가 다들 어렵다 말하는 분리수면을 해낸 것이 참 아이러니였다. 혼자 자는 아기가 안쓰러워 둘째를 낳아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육아는 끝없는 불안이자 동시에 놀라운 성취였다.
분유량과 수유텀에 매달리며 좌절하다가도, 결국 하루 네 번의 루틴이 잡히는 순간의 짜릿함은 게임에서 레벨 업하는 것보다 더 컸다. ‘내가 해냈다’는 감각이 이렇게 깊이 오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요즘 세상에서 사치스러운 유희다. 시중에 육아템은 넘쳐나지만 결국 사람과 시간, 돈이 있어야 한결 편해진다. 안정적인 직장과 적당한 집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라고들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현실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커가는 순간마다 느껴지는 기쁨은 그 어떤 대체재도 가질 수 없는 절대적 가치였다.

예전에는 시아버지가 아이를 낳으라 할 때마다 ‘생명을 그렇게 쉽게 만들라니,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사랑하는 자식을 키우며 느낀 그 벅찬 행복을, 또다시 이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음을.

몸은 여전히 고되고, 나는 여전히 서툴다.
그럼에도 아기가 주는 웃음과 성취가 나를 다시 일으킨다. 나는 지금, 이 ‘사치스러운 유희’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 유희는 내 인생 가장 값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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