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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Choi 최다은 Aug 22. 2024

출산은 '죽었다 다시 살아남'을 경험하는 일이다

처음 엄마가 된다는 것

아이의 생일 주간이다. 9년 전 처음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날을 회상한다. 생각보다 담담했다. 기쁨보다 얼떨떨하다는 표현이 그럴싸한,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나의 온 우주를 잃어버린 날이라 하면 너무 냉정한 것일까? 나처럼 엄마가 된 순간이 처음부터 감격스럽지 않다고 해서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솔직하게 써본다.




2015년 8월 25일 늦은 오후 6시 31분. 나의 딸아이는 우렁차고 큰 울음과 함께 (아이가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아빠가 큰 감동으로 탯줄을 자르는 일도 잊은 채, 태어난 아이보다 더 크게 꺼억꺼억 울었다는 에피소드는 더 이상 안 비밀) 엄마인 나와 만난다. 태명은 내 이름 '다은'과 남편의 이름'정재'의 앞 자만 따서 '다정이'이라고 지었다.

다정이가 나왔을 때 감격의 오열을 했던 남편과 달리 나는 아이의 눈, 코, 입, 손가락, 발가락이 제대로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야 안도한 그런 엄마였다. 그럴 이유인 즉 우리나라의 산모들이 대부분 하는 기형아 검사에서 다정이가 다운증후군 200대 1 확률의 위험군으로 나와 양수검사를 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왜 그 검사를 해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임신 중기에 설사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병원 측에 양수검사 거부를 이야기했다. 그럴 경우에는 엄마 아빠가 모두 와서 주치의와 면담을 받아야 하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치의 박사님이 남편에게 한 첫마디는 '다정이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면 우리나라에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하는지'였다. 주치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분명하게 안내해야 하고 혹여나 아이가 태어나서 말을 바꾸는 부모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다정이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아이였다. 상당히 강한 태도로 대화를 주도하셨다.


남편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점 덕분에 이 남자가 나의 남편이 되었구나 싶다.) 아이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다면 자신의 직업이 외국에서도 인정받는 직군이라 바로 나가서 키울 것이고 양수검사도 동일하게 위험한 확률의 것인데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맞대응을 했다. 우리 부부의 태도가 명확하니 주치의도 더 이상 양수검사를 권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운증후군 위험군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양수검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 ‘불안이’를 가진 엄마인 나는 초음파를 할 때도 늘 아이의 콧대를 유심히 보곤 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안도했다. 그렇게 만난 다정이다. 다정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나는 이 아이가 내 아이가 맞나? 내가 엄마가 된 것이 맞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낯설었던 것 같다.



엄마가 처음 되었을 때 모성애가 바로 생길 수도 있겠지만 많은 엄마들은 불어난 몸, 갑자기 달라진 나의 위치변화로 인해서 엄마가 된 것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지나 아이를 만나는 일은 그간 생생하게 펼쳐졌던 '나'라는 무대에서 '나'라는 존재를 맨 뒤로 옮기고 '나의 아이'가 맨 앞으로 등장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 무대의 정중앙을 차지하는 것은 내가 아닌 아이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출산 후 상실과 허무가 밀려온다면 괜찮다. 당연한 것이다.


아이를 낳고 바로 모성애가 없다고 자책할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고 우울감이 밀려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까?



나는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는 아닌 것 같다. 아이와 24시간 꼭 붙어 아이를 안고 뽀뽀하고 만지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며 내 아이에 대해 날이 갈수록 애정이 솟구쳤다. 만약 아이를 낳고 멀리 떨어져 내가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아이에게 그렇게 많은 애정이 생겼을까?


얼마 전에 신애라 작가님이 쓴 책 '하나님 그래서 그러셨군요'를 읽었는데 자신이 낳은 첫째와 가슴으로 낳은 둘째, 셋째 아이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둘째와 셋째 입양한 아이들이 딸들이라 더 애정이 갈 때도 있다는 그녀의 농담이 대단하면서도 진실되게 느껴졌다. 그만큼 키우는 정이 크다고 생각한다.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똥강아지 같은 내 새꾸가 되었다. 딸아이가 없으면 안 되는 '딸 바보' 엄마가 되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엄마 품에 안겨 평온함을 느껴야 하루 여밈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예민함이 엄마와 꼭 닮은 딸을 주셔서 감사한 오늘이다.


주아야 부족한 엄마에게 와 줘서 정말 고마워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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