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퇴근길 맨발편지
맨발러가 도착한 곳은 추암해변, 바람은 얇게 입맞춤하고, 모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말랑 말랑해졌다.
파도는 여전히 무심했지만, 내 발바닥은 참 다정했다.
저마다 고민을 안고 걷는 이들이, 묵묵히, 그러나 조금씩 웃기 시작하던 시간, 한 맨발러는 걷다가 모래 위에 글씨를 썼다.
“봄이 오긴 오네, 내 마음이 간지러워.”
누가 봄을 꽃으로만 말하랬나.
우리는 오늘, 발로 봄을 느꼈다.
남쪽, 북쪽 3번 돌아 오늘 맨발 걷기는 마감했다.
[낮술은 낮아서 좋은 술]
걷기 후 에너지는 충전됐지만 속은 허하다. 집에서 잠시 쉬자!
전화가 울린다. 가끔 주말 낮술을 즐기는 자랑스러운 동생 나의 보디가드 병철이었다.
“형님 낮술 한 잔 하시죠!”였다. 나는 큰 소리로 오케이…라고 했다.
달려간 술집은 명품 대패, 오늘의 안주는 금방 사라질 듯 얇은 고기 대패살이다.
기름이 살짝 올라온 살점에
청양고추 하나 얹고, 소주 한 잔… 캬!
옆에 있던 영상 감독, 오영상 씨가 "남자의 경쟁력은 낮술이야!' 란다.
바다 바람과 술기운이 섞여
사람들 입이 하나둘 풀리기 시작했지.
그때, 병철이가 말했다.
“야, 이게 바로 처녀가슴 언다는 거야”
다들 웃음으로 받아들였다.
“처녀가슴 언다니, 뭐야 또 고전 던지네.”
하지만 병철이는 진지했다.
“겉으론 따뜻한 척하지.
그런데 진짜 속은 싸늘한 거야.
딱 지금 이 날씨야.
사람 마음도 그래.
다 피어난 듯 보여도,
들여다보면 아직 언 데가 있어.”
순간 조용해졌다.
낮술로 붉어진 얼굴들이
잠깐, 제 마음의 냉기를 더듬었다.
그날 술자리는, 웃음과 침묵이 교대로 흐르며 참 따듯했다.
속이 얼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니 조금 녹아내렸다.
[맨발노트]
“봄은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천천히 데워지는 거다.
발바닥부터 시작해서 마음까지.”
[병철이의 말맛 명언집]
“사람 마음이 마지막에 피는 봄꽃이다.”
“낮술은 인생을 마시는 거야.”
[맨발레시피]
대패삼겹살 + 파무침 + 봄추위 한 모금 + 병철이 명언 한 접시, 완벽한 오후를 원한다면, 친구 하나와 적당히 바람 부는 날이 필수다.
[걷는 사람의 책갈피]
“봄의 문턱에서 바람은 시리고, 사람은 술기운으로 간신히 따뜻해진다.”
[마무리 인사]
오늘은 맨발로 시작해서, 대패 삼겹살과 소주로 이어졌고, 병철이의 말장난으로 하루가 완성되었습니다.
바람은 아직 완연하진 않지만, 우리는 이미 봄을 살고 있습니다.
그걸 발바닥이 먼저 안다는 걸 매일 확인 중입니다.
내일도 맨발, 내일도 사람, 응원과 댓글은 맨발편지의 미해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