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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Jan 20. 2024

묵호의 삶, 덕장 이야기!

7. 김은미 기록가_기록일지, 눈물의 묵호항!

기록일지, 눈물의 묵호항!
묵호 덕장, 사진_조연섭

기록일지, 눈물의 묵호항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지원하고 동해문화원이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2023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사업 사업이다. 산업유산 묵호항을 배경으로 묵호 사람 구술자 20명과 기록가 10명이 참여해 일궈낸 성과다. 국내 정상급 구술사, 아카이브 마스터 정혜경(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 김선정(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정보실장) 컨설턴트의 인문학 교육 클래스를 마치고 기록한 구술사 대장정이다. 구술에 참여한 기록가가 작성한 소감을 각색하고 기록해 둔다. 구술자는 묵호 거주 이우열 씨로 기록은 김은미 생활사 기록가가 담당했다.


• 구술자 이우열

구술자, 이우열, 사진_동해문화원DB

동해와 비슷한 바다마을 경북 포항 태생으로 포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24세에 동해로 이주하였으며, 결혼 후 동해에 정착하여 건조업으로 생계를 이어왔으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성실함과 묵묵함을 기본으로 열심히 일한 덕분에 건조인협회 회장 및 북부지역 바르게 살기 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삶을 위해 찾은 이방인, 덕장 이야기

포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군 제대 후, 동해 묵호항  활항기 시절 생계를 위하여 동해에 정착하게 된 이주민(移住民)이다. 학창 시절 장래 희망은 없고 그저 배부르게 먹고사는 것이 전부라 여기고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사촌이 자리 잡고 있던 묵호항을 끼고 있는 묵호에 터를 잡아 건조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 평생 덕장에서 명태 건조를 하게 되었다.

구술자와 기록가의 영상기록 캡쳐

이우열 구술자는 활항기와 쇠퇴기를 지나 현재는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는 묵호항을 중심으로 덕장마을 이야기를 아버지, 남편, 사회사람 일원의 삶을 추억 소환하듯 기억 기억을 풀어냈다. 포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삶을 위해 묵호항으로 찾아와 건조업을 시작하여 북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묵호 덕장의 이야기를 구술자만의 이야기로 이끌어 주시고, 명태 건조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생생하게 전달해 주셔서 알고자 하였던 덕장마을 이야기를 기록하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묵호의 명태, 언바람 묵호태

구술자는 “명태를 빨래처럼 널어 겨우내 약 3개월 정도를 바닷바람에 얼리고 녹이고 얼리고를 반복하면서 굳은 명태를 황태라 한다. 특히 비와 눈을 맞아 가며 말리는 용대리의 황태와는 다르게, 이곳 묵호덕장의 건조 방법은 비나 눈이 오는 날은 젖지 않게 덮개를 덮어 바닷바람으로만 말리기에 언바람 묵호태라고 불린다. 이 때문에 몸체 양쪽에 붉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고운 빛깔로 띠게 된다. “라고 한다.

덕장에서 동해시 홍보비디오 촬영, 사진_임정규 시 홍보실장

또 ”덕장에서 '덕'이라는 것은 명태를 널어 말리는 시렁을 이야기하며 덕장은 그런 시렁이 몰려 있는 곳이다. 동해 묵호등대에서 해맞이길을 따라가다 보면 덕장 1길 일대가 모두 덕장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 왼편 넓은 공간에 깨끗한 건물 최근 조성한 문화팩토리가 있고 옆을 지나서 잠시 가면 묵호 덕장이 나타난다며 몇 가구 안 남은 덕장은 아직도 한해 수백억의 매출을 올리며 새로운 이름 <언바람 묵호태>로 묵호 덕장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라고 했다.

묵호덕장_동해시 묵호동 덕장마을에서 묵호태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약 85년 정도 전부터로 보면 된다. 과거에는 도계에서 채광된 석탄을 이곳 묵호항까지 기차로 옮겨와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조그만 포구였다. 묵호항이 1937년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을 하게 되면서 명태, 오징어를 잡기 위해서 수많은 배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이 때는 물 반, 고기반 정도로 많이 잡혔다고 하는데,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배와 어부들 그리고 그 식구들이 이곳 묵호항에 몰려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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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많은 어부 가족들이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고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전통 건조방식으로 명태와 오징어를 말리기 시작했다. 묵호항은 1960년대에 최고로 번성을 했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묵호마을 주민들은 명태와 오징어를 지게로 짊어져 고지대 본인들이 살고 있는 집 마당에 말리기 시작했던 것이 묵호덕장의 시작이었다. 가내 수공업으로 말린 명태를 판매해 생계를 유지했으며 지금까지 가내수공업으로 덕장을 운영하는 가구는 50여 가구에서 현재 6 가구로 줄었다. 그 이유는 감소하는 어획량과 묵호마을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하여 지금은 일부만 80년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묵호덕장마을에서 겨울에 찬 해풍만으로만 말려졌다고 해서 언바람 묵호태, 묵호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묵호덕장마을 일원에서 생산되는 모든 묵호태는 '언바람 묵호태'로 상표등록을 마치고 출하된다고 한다. 묵호태는 11월~2월 겨울철에 약 15~20일간 건조 작업을 거치는데 4개월 동안 4~5회 정도 건조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지구 온란화 현상 때문에 겨울철 기간도 짧아지고 기온이 상승해서 슬프게도 건조시키는 횟수도 줄었다고 한다. 묵호태는 용대리 황태덕장과 대관령 횡계리 황태덕장에서 말리는 황태와는 달리 기간이 짧아서 상대적으로 신선함을 유지하고 햇빛과 해풍으로만 건조가 되고, 비와 눈이 맞지 않도록 방수포를 덮어서 건조를 하므로 위생적으로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 기록가 김은미

기록가 김은미

동해에서 성장한 선주민으로 27년 금융기관에서 일하면서 지역주민과의 만남으로 많은 이야기로 소통하였으며, 현재는 퇴직 후 서평지도사 및 팝업북 만들기 과정을 수료하여 독서동아리 활동, 바닷가 작은 마을 ‘망상해뜰책뜰’ 서포터스, 동해문화원 생활사 기록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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