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팬이어서 KIA 차를 타는 남자(2)

-해태에서 KIA까지, 언제나 타이거즈-

by 웅숭깊은 라쌤

<혼자서도 잘 놀아요-인프피 그 남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KIA 팬이어서 KIA 차를 타는 남자

-해태에서 KIA까지, 언제나 타이거즈-


(2) 국민 스포츠? 나도 국민? 그럼 내 스포츠!


94년 이래로 멈추지 않고 야구를 보아왔던 건 아니다. 청소년 땐 야구를 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중계 시간에 이래저래 학원도 다녀야 했고, 야구 중계를 방송사에서 빠지지 않고 해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매일 밤 21시 45분, 그러니까 9시 뉴스 막바지에 나오는 스포츠 뉴스만은 꼭 챙겨봤다. 거기에 야구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가끔 아버지가 보시던 스포츠 신문을 꼼꼼히 살피곤 했다. 스포츠 신문엔 전날 경기기록을 아주 상세히 실어주었다.

내가 청소년일 땐 타이거즈가 그리 성적이 좋지 않아서 사실 보기 싫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해태 왕조가 프로야구 9시즌을 우승했는데, 그 이후로는 우승 경험이 없었다. 마지막 우승이 97년이었는데, 이때 IMF가 터지면서 모기업인 해태의 상황이 나빠져 좋은 선수들을 죄다 팔아버리게 되어 팀 전력이 약화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때 유행어이기도 했던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라는 표현이 이때 등장한 것이다. 2001년 KIA가 타이거즈를 인수한 이후에도 성적은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종종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긴 했지만, 그래도 타이거즈 팬들에겐 우승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도 야구라는 세계는 조금 멀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야구 대표팀이 극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덕분에 이를 계기로 ―아닐 수도 있다― 10대, 20대들도 야구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도 밥보다 야구를 먼저 챙기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야구 인기는 어마어마했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기는, 그야말로 진정한 국민 스포츠가 된 건 이때부터인 것 같다. 이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나 역시도 아주 맘 편히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야구 정보 프로그램도 2009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야구 전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 즈음이다. 저녁에 친구들과 술집에 가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야구 경기를 볼 수 있었고, 심지어 나와 친구들의 단골 치킨집이었던 왕십리역 6번 출구 앞 ‘미스터 치킨’ 사장님은 KIA 타이거즈 공식 팬클럽 회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KIA 타이거즈의 2009년 성적은 최고였다. 당시 조범현 감독은 단단한 선발진을 구축하였고, 최희섭-김상현으로 이어지는 일명 CK포 역시 타선을 강력히 이끌고 있었다. 다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KIA였다.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을 몰라선 안 될 텐데!


지구 어디에서나 아주 맘 편히 야구를 즐길 수 있었다. 야구가 취미생활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온 우주가 나를 도와주고 있었단 말이다. 물론, 직장인이 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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