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자란다는 것(1)

-반려식물과 함께 하는 고된 성장기-

by 웅숭깊은 라쌤

<혼자서도 잘 놀아요-인프피 그 남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함께 자란다는 것

-반려식물과 함께 하는 고된 성장기-


(1) 어쩌면 그리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니


나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다들 여의도 윤중로나 한강 공원을 찾아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지만, 나에게 벚꽃은 그리 감흥이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학창 시절, 주말이 지난 후 월요일 아침 등굣길은 그야말로 쓰레기 밭이었다. 주말 내내 여의도를 가득 채운 인파들은 자신들의 흔적을 어김없이 남겨두고 갔다. 떨어진 벚꽃잎이 마치 천을 깔아놓은 듯 푸근한 느낌을 줄 것 같지만, 쓰레기와 함께 버무려진 벚꽃잎은 같은, 쓰레기일 뿐이다. 학교에선 봉사활동 시간을 준다며 학생들을 동원해 한강 공원 청소를 시켰다. ―물론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도무지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버리고 간 인간들을 불러다가 직접 치우라고 하면 되지 않나? 봉사활동 시간을 빌미로 학생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 학교 시스템이 맘에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살아있는 식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쓰레기가 되니까.

어머니는 서울 대림동에서 작은 꽃집을 운영하셨다. 지금이야 가게를 직접 운영하진 않지만, 성당에서 30년 가까이 꽃꽂이 봉사를 하시고, 종종 꽃꽂이 강사로도 활동하신다. 그야말로 ‘식물 전문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아파트 입주와 동시에 어머니는 큼지막한 화분 두 개를 선물로 주셨다. 집에 식물은 좀 있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나도 안다. 집에 식물은 좀 있어야 한다는 것쯤은. 그런데 말이다, 그 식물들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어간다는 게 문제다. 차라리 조화를 주시지…. 결국 쓰레기가 될 존재들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전문가였다! 식물 전문가이자, 아들 전문가.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줘도 알아서 잘 사는, 생명력이 매우 강한 ‘스투키’를 주셨다.

내가 녀석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오늘은 물 주는 날’을 정해놓고 그렇게 물을 주진 않았다. 어쩌다 눈에 띄면 ‘어? 물 줘야겠네’라는 생각이 들어 대충 물에 적셔주는 정도였다. 반려식물을 키운다는 건 내겐 좀 귀찮고 따분한 일이었다. 태도의 문제였달까? 녀석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인식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집안에 놓인 장식품 정도?

식물에 대한 나의 태도를 확 뒤바꿔준 사람은 고등학교 은사님이셨다. 스승의날,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로 배달이 왔다. 정체는 다름 아닌 ‘거북 알로카시아’.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었다. 매년 스승의날마다 꽃바구니를 보내드렸었는데, 이번엔 본인이 내게 선물을 주고 싶다며 직접 챙겨주신 것이다. 아니, 선생님. 저는 식물을 키우지 못 하…. 돌려보낼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녀석을 집 창가에 올려두었다.

거북 알로카시아도 생명력이 아주 끈질긴 존재라 쉽게 시들거나 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다. 일주일 물 한 번 정도만 주면 알아서 잘 큰다고, 배달 오신 직원분이 말씀하셨다. ‘그래, 나도 한 번 해보자, 안 까먹고 물만 주면 되겠지, 선생님이 주신 선물인데 한번 잘 키워보자!’라는 다짐을 했다. 자신이 있었다.

녀석은 정말 잘 컸다. 어머니의 스투키와 선생님의 거북 알로카시아는 경쟁이라도 하듯 쑥쑥 잘 자랐고, 색깔도 참 예뻤다. 그냥 ‘녹색’이 아니라, 녹색 중에서 가장 예쁜 녹색을 찾아 발라놓은 듯했다. 한동안은, 그랬다.


두 식물과 이사 기념으로 대학 동기가 선물해준 금전수까지, 총 세 식물은 우리 집 서재의 창가에 올려져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서재에 들어갈 일이 없어지면서부터 생겨났다. 서재에서 귀신이 목격되었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퇴근이 늦어져서였다. 학교에는 매년 토론 한마당이란 행사가 열리는데, 내가 직접 행사를 주관하다 보니 일주일 넘게 매일 밤 열 시가 넘어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피곤해 죽겠는데 또 일하기 위해 서재로 들어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녀석들은 내 뇌 구조에서 조금씩 지워져 갔다.


물론 학교 행사가 일 년 내내 진행되는 것은 아니므로 다시 서재에 드나들었을 게 분명하지만, 그때 나의 뇌 구조에는 ‘물 주는 일’이 아예 삭제되어 있었다. 원래 식물을 집에 들이면 늘 이런 일이 반복된다. 처음에는 거의 밀림 수준으로 집안을 ‘식물화’시켜보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결국 다들 죽어 나가는, 그래서 쓰레기가 되는 절망적인 현실. 그 현실이 찾아온 것이다. 얼마 만에 녀석들이 내 눈에 든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창백하게 말라 있던 거북 알로카시아를 발견했다. 다,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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